[Opinion] 연극 - 달의 목소리 [공연예술]

정의가 정의로 대우받는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가요?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요?
글 입력 2015.09.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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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목요일 저녁,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연극 <달의 목소리>를 관람하였다.
이 공연은 극단 독립극장의 정기공연으로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항일 독립운동에 온 몸을 던지고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들을 인생 전반을 걸쳐 직접 겪으셨던 故정정화 여사의 삶을 기리는 연극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며느리였으며 수차례 목숨 걸고 국경을 넘나들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던 투쟁의 대표자였다.​
그러나 정정화 여사의 이름은 생각보다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광복 7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
연극으로 대중들이 정정화 여사의 삶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큰 기회나 다름 없다.​
 

 
<시놉시스>
 
작품은 배우가 왜 故정정화 선생의 이야기로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지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정정화라는 인물이 걸었던 시대를 시간을 쫓아가면서 독립이라는 역사적 명분아래 인간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치와 의미 그에 따르는 두려움과 감동, 시대의 정의에 대해 묻는다.
정정화 여사가 처음 상해로 건너갔을 때부터 독립자금을 구하기 위해 본국을 드나들었던 기록과 세계정세에 흔들렸던 독립의 위기와 독립이후 국내 사정, 그리고... 전쟁... 독립을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았던 한 여인이 차디찬 철창 안에서 자신의 삶을 무너트릴 수 밖에 없었던 신념을 빼앗겼던 기록까지..
배우는 그녀를 세웠던 힘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는 동시에 우리가 지금 무엇으로 나를 세우고 있는지 묻는데....
 
 
"난 내 이야기를 남기고 싶지도 않다, 자랑 거리도 아니고 자랑하자고 한 일도 아니다.
나 아닌 누구였어도 다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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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본 무대의 모습
 
극장에 들어서면 큰 스크린이 떠 있고 무대 위에는 열두개의 책상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상의 쓰임새가 어떤지 궁금했는데... 극이 진행되면서 너무도 처절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연극은 1인극으로 진행된다. 배우는 극단 독립극장의 대표인 원영애가 배우로 분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배우에 그치지 않았다.
원영애라는 자기 자신으로서 이 극의 해설자로 임하기도 했다가, 아주 처절하게 울부짖는 정정화 여사 즉 극 중의 실제 화자로 분하기도 했다.
 

해설자로서 배우는 먼저 자신이 정정화 여사를 만났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연극을 진행해나간다.
왜 자신이 정정화 여사의 삶을 이야기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임시정부의 주요인물이었던 시아버지 김가진을 상해로 떠나보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시아버지와 동갑내기 남편을 조국 독립을 위해 상해로 떠나보낸 후 머지 않아 1920년에 그녀도 상해로 입성한다.
그리고 1920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무려 26년 간, 그녀는 궁핍한 망명객들로 채워진 임시정부의 요인들을 살뜰히 돌보고 끼니도 잇기 어려운 가난한 임정의 살림을 꾸렸으며, 목숨 걸고 여섯 차례나 사선을 넘나들며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자금 모금 임무를 수행하였다.
상해에 간지 머지 않아 시아버지와 친정 아버지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꿋꿋하게 조국 독립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이다.
 

그녀는 독립자금 조달을 위해 국내를 오가던 와중 일본 경찰에 잡혀 종로경찰서에 끌려가는 경험을 했다. 조선인 경찰이 정정화 여사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이세창을 잡아 그녀의 눈 앞에서 고문하다가 죽게 만든다. 그녀는 같은 조선인이 그와 같이 잔악무도한 행위를 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고 자신으로 인해 한 생명이 순식간에 빛을 잃어버리는 것을 목도하며 죄스러움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또한 첫아들 후동을 낳은 후 국내로 잠입했던 시기, 자신을 여러차례 숨겨주었던 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집의 며느리가 "뉘신지?"라며 박대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녀의 회고록에는 이 경험을 두고, 무안하기 이를 데 없어 빠르게 그 집을 빠르게 빠져나왔고 아들의 손을 붙잡으며 조국이 독립하기 전까지는 다시 돌아오지 말자며 다짐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그녀에게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자신과 남편 그리고 임정의 수많은 요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과연 이 독립은 누구를 위한 독립이며 누구를 위한 투쟁인가.
조국이란 무엇인가.
이 길에 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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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의 목소리>의 티켓
 
 
일본의 만행이 극심해지고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해에 있던 임정이 점차 중국 내륙 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정정화 여사는 수차례 고비를 넘기며 광복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조국의 광복은 찾아왔으나 미군정은 임시정부 요인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도록 만들었다. 그것부터 이미 가슴에 한이 될 일이었을 텐데 그녀와 임정 요인들이 귀국하여 기차를 타고 상경할 때 정말 치욕스러웠던 것은 일제 앞잡이들이 새로운 경찰 옷으로 바꿔 입고 짐수색이랍시고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던 광경이었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투쟁한 이들을 예우하지는 못할 망정 매국노들을 그대로 국가를 위해 일하게 만든 미군정을 보며 얼마나 기가 찼을런지.
 

게다가 그녀는 6.25 무렵에 남편이 북쪽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생이별하게 된다.
이미 젊은 시절 충분히 풍파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아픔이 찾아온 것이다.
이 대목에서 배우는 화자로서 이렇게 읊조렸다.
   "다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잃을 게 또 있었네요. 나한테 당신이 있었어요."
 

6.25가 종식된 이후, 북쪽에서 그녀의 남편이 무사히 살아있다는 소식이 정정화 여사에게 도달했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국가에서는 그녀를 잡아들여 문초한다.
그런데 정말 가슴 아팠던 것은, 그녀를 문초한 사람이 바로 수십년 전,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다 붙잡힌 그녀 앞에서 이세창을 고민하며 죽였던 그 조선인 경찰이 그녀를 고문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뼛속까지 시린 감옥에 투옥되면서 그녀의 마음은 부서진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건만 조국은 그녀를 버리고, 조국을 저버렸던 이들을 택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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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에서 내려다 본 무대의 모습, 달의 목소리라 쓰인 스크린 위에 피 묻은 적삼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달은 묵묵히 어둠을 비춘다. 가장 어둡다고 생각되었을 때 오히려 달은 세상을 더욱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리고 날 비추고 있는 저 달은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묵묵히 우리 조국을 그리고 우리 역사를...
달은 이렇게 우리를 위로하듯 비추고 있었다."
 

그 풍파와 같은 인생을 살고서도, 그녀는 저렇게 담담하게 말한 위인이었다.
 
 
정정화 여사는 당신의 삶을 기리기 위해 회고록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이세창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이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운동가들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릴 것이기에 끝끝내 붓을 들어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극은 그 전체가 하나의 레퀴엠이었다.
연극 초반에는 사진에서 보듯이, 무대에 왜 책상들이 놓여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연극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정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으며 수없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별이 되셨다.
그 때마다 화자이자 해설자인 배우는 참담한 마음을 가리며 조용히 책상 위에 국화 한송이씩을 올렸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정정화 여사의 삶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돌아가신 모든 분들을 기리는 진혼곡이었던 것이다.
 
 
해설자로서 배우의 마지막 외침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울림이 되었다.
나 역시 그 말로 내 소감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정의가 정의로 대우받는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던가요?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건가요?"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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