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 철학(1): 니체의 미학과 마크로스코 [예술철학]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글 입력 2015.08.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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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1): 니체의 미학과 마크로스코
-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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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부터 감정의 동요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예술의 범위를 회화로 좁혀보자. 그림을 통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오는 기쁨이나 즐거움, 슬픔과 고통, 두려움, 절망을 경험한 적 있는가? 물론 이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보는 이의 (상상이나 사유 따위의)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가령, 뭉크의 <절규>를 마주하고 한 줄기의 우울이 엄습해왔던 체험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앞에서 발이 묶인 채 누군가의 혹은 내 안의 울부짖음를 듣는다거나 하는 경험 말이다. 또 한 폭의 풍경이 그려진 그림 속에서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 한 자락을 발견하거나, 고흐의 <어머니의 초상>과 같은 그림 속에서 나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찌할 수 없는 가슴 속 울림을 느꼈을 수도 있다. 특히나, 그림을 그릴 때의 작가의 상황이나 감정이 나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면,그러니까 작가와 같은 눈으로 그림을 바라본다면 그 그림은 보는 이의 내면을 완전히 적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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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져서는 안된다
작품에 어떠한 설명도 달아서는 안되며,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 뿐이다.
- 마크 로스코


그렇다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경험했던 어떤 그림보다도 나를 압도했으며, 감정적인 소용돌이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림이 바로 마크 로스코의 것이다. 엄청나게 큰 캔버스 위로 칠해진 바탕색 위를 층층히 떠돌며 미묘하게 변하는 색면들은 나로 하여금 굉장히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작가가 느꼈을 어떤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 받는다거나, 현재 내 심정의 폭발이 그것이다. 로스코는 비극, 황홀, 숙명 등을 표현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주제로 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로스코의 작품이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그의 회화가 지니고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힘*을 보여준다.

* 디오니소스적인 힘: 간단히 말해, 도취와 몰입의 상태가 고양되어 몰아(沒我)에 이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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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세계에서 조형 예술가의 예술인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의 예술인 비조형적 음악 예술은 기원과 목적에서 크게 대립하고 있는데, 이런 우리의 인식은 그리스인들이 신봉했던 두 예술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에 결부되어 있다. 각각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는 이 두 종류의 충동은 대체로 공공연히 대립하며 서로가 항상 새롭고, 보다 힘 있는 탄생물을 낳도록 자극하면서 평행선을 이루며 나아간다. 이런 탄생물들 속에서 저 대립의 투쟁은 지속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두 충동들은 그리스적 '의지'의 어떤 형이상학적 기적을 통해 결국에는 서로 짝을 맺게 되며, 이런 결혼을 통해 최종적으로 아폴론적이면서 디오니소스적이기도 한 아티카의 비극 작품이 산출되는 것이다. - 니체 <비극의 탄생>



니체의 미학에 심취해있었던 로스코는 니체의 처녀작 <비극의 탄생>을 허리춤에 끼고 살았다. 결국 니체의 ‘비극’ 개념, 즉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결혼’이라는 개념은 로스코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꽤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니체의 '비극' 개념을 간단히 살펴보고, 이에 근거하여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읽어보고자 한다. 

니체는 예술을 설명하는 원리로 그리스 신화의 신들 중에서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빌려온다. 빛과 이성을 상징하는 아폴로와 포도주와 도취, 광란, 그리고 생명의 근원인 대지의 생산력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는 신화에서 대립쌍을 이루며 존재하는데, 니체에게 위대한 예술이란 아폴론적인 것(das Apollinische)과 디오니소스적인 것(das Dionysische)의 조화였다. 

먼저 아폴론적인 예술 충동은 조형적인 것과 관련한다. 빛의 신인 아폴로는 모든 시각적인 것을 지배하며, 질서와 형식의 미를 창조할 힘을 가진다. 반면, 디오니소스적인 예술 충동은 비조형적인 것, 그러니까 음악적인 영역과 연관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쉽게 이해하자면,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이 평소의 자신의 모습을 잊은 채 격정적으로 노래를 부른다거나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그러고보면 한국의 술 문화는 굉장히 디오니소스적이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마취적 음료의 영향을 통하여, 혹은 모든 자연을 흥겹게 관통하는 봄의 힘찬 접근의 순간에, 저 디오니소스적 격정이 눈뜨게 된다. 이 격정이 고조되면서 주관적인 것은 완전한 자아 망각으로 변모한다." 

정리해보자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낮과 밤, 분별과 무분별, 이성과 감성, 유아(有我)와 무아(無我), 시각과청각 그리고 조형 예술과 비조형 예술로 말할 수 있다. 니체는 이 둘을 서로 환원할 수 없는 예술의 두가지 기본 범주로 보았으며, 모든 예술 활동의 발전은 이 둘의 대결과 화합의 반복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둘이 온전하게 결합한 형태를 그리스 비극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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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을 응시한다면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그 색이 될 것이고, 전적으로 그 색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
- 마크 로스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결혼’을 현대의 예술에 대입시켜보자면 회화적 음악이나 음악적 회화의 탄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음악적 회화보다 회화적 음악에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드뷔시의 <달빛>을 듣고 있노라면 밤하늘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달빛이 눈 앞에 그려질테고, 비발디의 <사계>는 계절을 그린 풍경화를 떠오르게 한다. 반대로 그림이 음악처럼 부지불식간에 가슴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우리의 감정을 흔들고 내면을 적실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그리고 생각건대 그 답에 가장 적확한 작가가 바로 마크 로스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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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상적인지 아니면 재현적인지라는 문제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런 침묵과 고독을 끝내고
다시 한 번 숨을 내쉬고 자신의 팔을 쭉 펴는 것이다.
- 마크 로스코


로스코의 전성기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아폴론적인 것에서부터 관람하게 된다. 바탕색 위를 떠다니는 두 개 혹은 세 개의 색덩어리가 그것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아폴론적인 것을 보는 단계에서 감상을 멈추는데, 그렇게 관람을 끝낸다면 로스코의 그림은 그저 파레트에 가지런히 배열된 물감에 불과하게 된다. 로스코의 그림을 감상하는 데 가장 중요하는 것은 그림 안으로 들어가 도취되는 것, 즉 디오니소스적 것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로스코 본인 스스로도 그림을 그리는 순간 그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아주 큰 캔버스를 선택했다).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의 첫 단계는 몰입이다. 일 분이고 십 분이고 그림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 일련의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 로스코의 그림은 보통 초기, 과도기, 전성기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가장 로스코적인 그림인 전성기 그림만을 이야기한다. 전성기 그림은 그 형식이 일정한데, 언급했다시피 바탕색이 칠해진 아주 커다란 캔버스에 두세 개의 색면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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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로스코의 그림을 보며 "에이 저건 나도 그리겠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로스코처럼 그릴 수 없을 것이다. 대가들의 그림은 사실 엄청난 연구와 끊임없는 붓질로 탄생한 것이니까. 로스코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색을 칠할지, 또 색조합은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좀 더 투명하게 칠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했다. 그림 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전달하지 또 생각한대로 실현해내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언젠가 로스코의 그림을 감상하는 날이 온다면, 그 때 감으면 감을 수록 선명해지는 그림, 음악처럼 온 몸을 휘감는 그림을 제대로 느껴보시길 바란다. 당신의 음표는 어떠한 색인가?





Reference

이수철, 신화와 비극을 통해본 니체의 미학, 2001, 홍익대학교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01.30, 국학자료원, 디오니소스적인 것/아폴론적인 것
김광우(역), 로스코의 색면 예술(숭고한 아름다움의 미학), 2007, 마로니에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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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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