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 읽기(2): 시간을 붙잡는 방법, 온 카와라[다원예술]

온 카와라에 대하여
글 입력 2015.07.3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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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읽기(2): 시간을 붙잡는 방법, 온 카와라
 

달력 한 장을 넘긴다. 또 흐른다. 무엇이 흐르는 지 알지못한 채, 우리는 오늘도 무엇인가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 무엇을 움켜 잡아보지만 손 틈 사이로 우수수 떨어진다. 하루를 보내고 남아있는 것은 하나 혹은 서너개 정도의 기억, 그마저도 이틀 뒤면 까마득한 망각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쓴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자취를 남긴다는 것, 시간 속에서 유한하게 존재하는 인간이 무한하게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행위이다. 누군가는 언어로 기록할 것이고,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몸짓으로, 또 누군가는 그림으로써 기억을 써내려갈 것이다. 지금부터 이야기 할 한 예술가는 시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해 일생을 다해 탐구한 사람이다.       




온 카와라 On Kaw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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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일본에서 태어난 온 카와라(On Kawara)는 현대개념미술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의 초기 회화는 구상적이었으나, 60년대를 지나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는데 집중하면서 회화의 성격을 달리했다. 미학적 요소를 극단적으로 배제한 채, 표현의 도구를 숫자, 단어, 기호 등으로 제한했다. 캔버스에 머물고 있는 도시의 언어로 오늘의 날짜를 그려넣은 <오늘 연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개인적인 것이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려하여 인터뷰에 응하거나 이력, 사진 등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하여, 작품 이외에 그를 알기란 굉장히 힘들다. 단지, 그의 작품의 특성 상 삶의 주기를 추측할 뿐이다. 그는 작년 이맘때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향년 82세).

1968년 봄, 온 카와라는 뉴욕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멕시코 시티로 떠난다. 1년 동안 계속된 남미여행은 아내 히로코 히라오카와(Hiroko Hiraoka)의 신혼여행이자 자신이 구상한 예술적 콘셉트를 전개할 작업여행이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이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상 시간을 확인한 뒤, 엽서 뒷면에 '나는 일어났다'라는 메세지와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고무도장으로 찍어 두 명의 지인에게 보냈다. 이는 <나는 일어났다 I Got Up> 프로젝트이며, 1970년부터는 '나는 살아있다'는 영문 메시지를 전보로 보내기 시작했다. 우체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사서 읽고, 읽은 기사를 스크랩했다. 이 후 <오늘 Today> 시리즈를 제작했고, 날이 저물어 갈 때 쯤이면 지도 위에 하루동안 움직인 경로를 붉은 잉크로 표시하여 서류철하는 작업과 하루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타이핑하여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각각은 <나는 갔다 I Went>, <나는 만났다 I Met> 일지로 알려져있다. 

그는 자신의 일상을 작품으로 치환한 작가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지금, 자신이 일어난 시간, 자신이 읽었던 책, 자신이 지나쳤던 장소,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이 그에게는 작품이었다. 또한 온 카와라에게 매일 매일 그린다는 행위는 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다. 톱니바퀴처럼 이어지는 일상을 망각하기보다 기록함으로 기억하려하는 것이다.




나는 일어났다 I GO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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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어났다>는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엽서에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고무인으로 찍은 다음, 지인들과 미술계 인사들 혹은 모르는 사람 2명에게 발송한 것을 한데 모은 작품이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79년 고무도장을 도둑맞은 뒤 엽서보내기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I Am Still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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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카와라의 트윗 계정에는 그가 숨진 뒤에도 매일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는 1970년부터 시작한 전보 시리즈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엽서 시리즈와 같이 거의 매일 규칙적으로 '나는 아직도 살아있다'라는 전보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한번은 '너는 아직도 살아 있니?'라는 회신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카와라는 <나는 일어났다>와 <나는 아직 살아있다>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강조한다. 그는 삶과 죽음의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대해 탐구했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했으며, 잠과 명상과 같은 잠시의 휴지상태도 일종의 죽음으로 보았다. 즉 그에게 하루하루 깨어나는 것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남을 의미했고, 그 순간을 엽서와 전보로 남기면서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태도는 일본문화로부터 배운 것이라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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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작 The Today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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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카와라는 1966년 1월 4일 뉴욕에서 '데이트 페인팅(Date Painting)'이라 불리는 <오늘 연작 The Today series>을 시작하여, 죽는 날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그는 <오늘 연작>을 시작할 때 부터 자신의 죽음과 함께 작품이 완성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날짜그림, 일본에서는 일기회화로 말해지는 데이트 페인팅은 그레고리력(양력)에 따라 작품을 제작한 날짜를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다. 그는 작업에 일정한 원칙을 정해두고 따르는데, 그가 말하기를 날짜그림은 하루에 세 개까지 그릴 수 있으며 자정에 시작하여 다음날 자정까지 24시간 내에 완성되지 못하면 파기한다. 방랑가적 기질을 가진 온 카와라는 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작품을 제작했다. 이 때 시간표기법은 그날 있었던 지역의 표기법을 따른다. 날짜그림은 단색의 바탕 위에 제작날짜를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캔버스에 5번 밑칠을 하고 날짜를 흰 물감으로 7번 칠한다. 캔버스의 크기는 20.5X25.5cm에서 155X225cm까지 다양하게 선택되었다. 또 각각의 작품을 보관하기 위해 신문지로 안을 덧댄 마분지 상자를 만들었다. 작업 초기에는 그림의 뒷 면에 당일 신문을 오래 붙이기도 하였다. 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온 카와라의 작업은 캔버스에 시간을 붙잡아 순간을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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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카와라는 <오늘 연작>과 연계하여 1969년 <백년 달력>을 만들었다. 1933년 12월 23일부터 시작되는 달력에 노란색, 녹색, 빨간색으로 표시를 남기는 것이다. 아무 작업도 하지 않은 날에는 노란색을, 날짜그림을 제작한 날에는 녹색을 칠한다. 또 복수의 날짜그림을 그린 날은 빨간색으로 칠한다. 간략한 자서전과 같은 이 달력을 만든 이유 또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함이었다.




나는 읽었다 I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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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갔다 I W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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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났다 I 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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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과거 One Million Years-Past와
백만 년-미래 One Million Years-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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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과거>는 1969년 이전의 백만 년을 <백만년-미래>는 1981년 이후의 백만 년을 타이핑하여 제본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 사이에 생략 된 12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일정 지점의 부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생각된다. <백만년-과거>는 한 페이지당 500년, 한 권에 10만 년씩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동안 살다가 죽은 사람들 모두를 위하여"라는 헌사로 시작한다. <백만년-미래> 또한 10권으로 구성되며 첫 장에는 "마지막 생존자를 위하여"라는 헌정문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독일 현대미술 전시회 '도큐멘타 2002'에서,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자원자들이 낭독하는 행위로도 선보여졌다.

온 카와라가 <백년 달력>으로 개인의 자서전을 완성했다면, <백만년-과거>와 <백만년-미래>로 전인류의 시간을 기록했다. 이 책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단지 몇 줄을 차지할 뿐이다. 작가는 백만년의 유구한 과거와 백만년의 까마득한 미래 속에서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 한 사람의 삶을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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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에 대해 누구는 존재의 유한성과 필멸성을 읽고, 또 누구는 집요한 존재 증명의 의지를 읽는다. 그가 생의 한때 샤르트르와 카뮈의 문학에 심취했다는 점을 들어 실존주의 철학의 어떤 개념들로 그의 작품을 탐구하는 이들도 있고, 20세기 웨일즈 시인 딜런 토마스의 유명한 한 구절 '그 멋진 밤 속으로 고이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를 앞세운 길 글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항거하는 의미로 그의 <오늘 연작>이 이어졌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Japan Times, 2000.4.30)

 

Reference

이미지
위키아트 http://www.wikiart.org/ 

자료
다니엘 마르조나, 개념미술, 마로니에 북스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마로니에 북스
임근중, 이것이 현대적 미술, 갤리온
캔버스 위 시간은 멈췄지만, 그는 아직 살아있다, 한국일보
네이버 지식백과, 온 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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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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