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의 체온 _ 예술공간 서울

글 입력 2015.07.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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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 서울' 이라는 곳은 번화가가 아닌 구석진 곳에 있어서 찾아가는 도중 길을 살짝 헤맸다.
규모도 아주 작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있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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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사진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패트병 등 각종 쓰레기들이었다.
관객들이 쓰레기를 버렸을 리는 없고, 분명 기본 무대 세팅인 게 분명한데, 저건 무슨 뜻이지?
(과연 연극이 시작되면서 그 쓰레기들에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리뷰에서 언급했듯이, '기억의 체온' 은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나메, 데루오, 시게루 이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제일 중심이 되는 장소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는 어떤 가게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가게는 '특정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그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을 때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는 곳'이다.
예를 들면, 계란찜을 푸딩인 줄 알고 먹으면, 그 계란찜은 그 사람의 믿음에 따라 푸딩으로 변하는 식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는지 참... 작가가 대단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지닌 듯)

이 가게에서 가나메는 의도치 않게 시게루의 도플갱어를 탄생시키게 되고,
이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혼란에 빠진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은 시게루와 동일한 인물이 한 명 더 생기는 게 아니라,
가나메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시게루의 모습'이
도플갱어의 모습을 통해 원래의 시게루에게서부터 빠져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곧 그 가게는 '우리 모두가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특정 대상'을 실제화하는 공간인 것이다.
이 가게는 다름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 하다.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타인이나 어떤 대상을 만날 때
그 대상에 대해 절대로 100% 완벽하게,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난 저 사람에 대해서 다 알아' 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이미지조차 주관적인 판단으로 재해석되었거나, 그 사람의 '일부'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100% 그리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부분적인 모습을 판단할 때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찌됬건 편협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극 처음에 등장한 '쓰레기들'과 '신성한 의미가 깃든 바위'가 의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공간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면
그 공간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곳을 쓰레기장이라고 믿게 되지만,
쓰레기를 치우고, 거기 있는 바위에 신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장식을 걸어두면
그 때부터 그곳은 신성한 장소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때부터 그 곳은 신성한 장소라는 신념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이 곧 현실이 된다.


이 연극은 이 사실을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냉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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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무겁고 어려운 연극인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배우들은 각자가 맡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잘 살려냈고, 웃음 포인트도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시게루의 도풀갱어와 가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중심으로
추리극 비슷하게 연극이 진행되기 때문에 재미가 쏠쏠하다.


이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은 아마 두 종류로 나뉠 것이다.
의미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관객들, 그리고 재미도 좋지만 뚜렷한 주제나 교훈을 얻어가고 싶어하는 관객들.
이 연극에서는 재미와 의미, 둘 다 얻어갈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연극들은 재미 위주이거나 의미 전달 위주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재미를 위한 연극에도 분명 주제는 있고, 깊은 의미를 담아내고자 한 연극에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요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재미'와 '의미' 두 가지 요소를 같은 수준으로 동등하게 끌어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기억의 체온'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흔치 않은 작품인 것 같다.
심각하게 집중할 필요 없이 가볍게 봐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또 굉장히 심오한 뜻이 숨어있으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분명히 이 연극이 어떤 거대한 의미(?)를 관객에게 던져준다는 것도 알겠고
그게 무엇인지  50% 정도까지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주제를 100%까지 파악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직 인생을 더 살아봐야 하거나, 아니면 해석 능력이 부족하거나... 흠... 그만큼 주제가 깊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연극이 넌지시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과연 진짜로 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음, 글쎄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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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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