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죽음 그 이상의 경이로움. 안토닌 드보르작 '레퀴엠'

글 입력 2015.07.1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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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중간이나 끝나고 바로 글을 쓰지 않으면 
음악의 여운이 어느 정도 흩어지고 단편적인 기억만 남는다.

조금 아쉽지만 그렇게 기억의 조각들을 띄엄띄엄 엮어 
전체적인 이미지와 느낌을 적어 내려가려 한다.

오케스트라 70명, 합창 113명, 4인의 솔리스트 그리고 오르간.
이렇게 거대하고 장엄한 공연은 처음이었다.
웅장한 규모가 단번에 죽음의 무거움을 다룰 것을 암시했다.

마치 스멀스멀 새벽이 몰려오는 느낌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다만, 생명이 시작하는 연한 회색빛의 새벽이 아닌 어둡고 침침한 새벽이었다.

그렇게 긴장감 속에 시작한 드보르작의 레퀴엠에서는 
아주 커다란 성당 안에 홀로 남겨져 고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음악은 내게 말했다.
내 생에 죽음이 어느 시점에 위치하든, 거대한 신과 자연의 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절대로 강요하거나 억압받는 무서운 명령은 아니었다.
오히려 편안히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의 신호였다.
 
죽음을 바로 앞둔 이에게는 신의 가호를 받으며 올라가라 하고,
아직 살날이 많은 이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

그리고 신의 심판 앞에서 인간은 계속 소리를 내며 노래한다.
자신의 생명력을 증명하려는 듯이. 





알아 들을 수 있는 가사는 음악사 시간에 접한 키리에, 글로리아, 상투스, 아뉴스데이 등의
미사 용어 정도이고, 프로그램북을 보지 않고서는 음악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악이 뿜어내는 거룩함은 초월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경이로웠다. 아주 커다란 자연물 사이에 고뇌하고 있는 한 노인을 보았다.
성경에서 나올 법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하고 노아의 방주가 떠오르기도 했다.

또, 이것은 마냥 슬픈 죽음의 레퀴엠도 아니었다.
오히려 유한한 끝 앞에서 삶에 대한 예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남은 시간을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운명의 끝이 빨리 올지라도
나의 곁에 있을 거룩하신 분이 있을 거라고.
그게 설령 신이 아닐지라도
죽음 이후에도 나는 완전히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여태껏 내가 받은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 중에서 첫 클래식 연주회였다.
‘사전 조사를 좀 더 충분히 한 후에 왔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갔지만
절대적인, 인간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더불어 나의 삶과,
옆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음악 속에 살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한 날이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아니더라도
생소한 음으로 기억되더라도
넘볼 수 없던 어떠한 경이로움을 드보르작이 그려줘서
또 서울오라토리오의 연주로 그것을 감상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트인사이트

[조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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