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영화, 그리고 철학(2):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 [예술철학]

영화 < 라쇼몽 >과 니체의 관점주의
글 입력 2015.07.14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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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고 철학(2):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
영화 <라쇼몽>과 니체의 관점주의



영화 <라쇼몽>

우리는 하루를 멀다하고 다툰다. 모든 다툼에는 각자의 입장과 논리가 있다.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틀린 경우도 완벽하게 맞는 경우도 없다. '다른' 가치관, '다른' 시각,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를 점멸하려는 엉성한 전쟁은 온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데올로기 대립과 같은 거대한 갈등에서부터 개인 간의 사소한 다툼까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은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마주 대하게 되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movie_image (2).jpg▲ 영화 <라쇼몽>, 마사코(쿄 마치코, 좌측)와 타쇼마루(미후네 토시로, 우측)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라쇼몽>과 <덤불 속>을 각색한 것으로, 1951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를 전세계에 알렸다. 또 2000년 50주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의문의 여지 없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두고 산적과 사무라이의 부인, 사무라이의 혼 그리고 목격자 나무꾼이 서로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미풍이 불지 않았더라면 저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인데..."
산적 타쇼마루는 미풍에 흩날린 베일 사이로 비친 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했다는 꽤 서정적인 말로 진술을 시작한다. 그는 사무라이를 포박하고, 그의 아내 마사코를 겁탈하였다. 하지만 처음에 격렬히 저항하던 부인은 어느 순간 자신과의 관계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 부인은 자신의 치부를 두 남자가 알게 할 수 없다며,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타쇼마루는 사무라이와 정정당당한 결투를 벌였고, 스물 세 번 검을 부딪힌 끝에 무사를 살해한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나를 바라보는 그이의 눈빛은... 차가운 증오의 눈빛이었어요"
죽은 사무라이의 부인 마사코는 타쇼마루에게 능욕 당한 후,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경멸어린 눈에 정신을 잃은 마사코는 깨어나보니 남편이 자신의 단도에 찔려 죽어있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스스로 몇 차례에 걸친 자살시도를 하지만 실패한다.


"인간이 어찌 그토록 비열하고 저주스러운 말을 할 수 있는가"
죽은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증언은 무당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다. 무당이 말하기를, 산적이 부인를 겁탈한 후 자신의 아내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녀는 타쇼마루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한다. 자신을 배신한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를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산적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무사는 스스로 자결했다.


"다 거짓이야, 전부 거짓말을 하고 있어"
현장을 목격했던 나무꾼은 사건에 연루된 세 사람의 진술을 듣고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고 읊조린다. 자신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산적 타쇼마루가 마사코를 겁탈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이후 마사코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 결투를 붙이고는 도망갔다고 진술한다. 산적과 사무라이는 한 여자의 꼬드김에 자존심을 사수하기 위한 의미없는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네 사람의 진술은 어느정도는 일치하나, 얼마지나지 않아 엇갈리기 시작하고 모순된 부분까지 나타난다. 감독은 증언자들의 시선을 관객에게 향하게 한 뒤,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말이 사실이며 진실일까? 누가 보는 것이 '진짜'인 세계일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보라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않으면서 끝나고, 사건의 진위는 확정되지 못한다. 


layout 2015-7-12.jpg▲ 영화 <라쇼몽>, 진술 중인 증언자들
 

사건의 결말을 주지않은 감독의 의도는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서로의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파악되거나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나무꾼이 묘사한 싸움은 타쇼마루가 말한 영예로운 결투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자는 산적과의 관계를 결코 즐긴 적이 없지만 타쇼마루는 그렇다고 기억했다. 또 죽은 사무라이를 제외한 누구도 사무라이가 자살을 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사무라이 스스로는 자결을 했다고 믿었다(사무라이가 산적에게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모두 자기가 편한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한 것이다.

영화 <라쇼몽>이 세상에 나온 뒤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이는 하나의 사태에 대한 다른 관점과 해석의 차이 그리고 이로인한 갈등을 일컫는다. 영화 <라쇼몽>에서 등장하는 복잡한 갈등관계는 단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라쇼몽 효과'는 수없이 나타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입장 차이,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의견 차이, 한 원내대표의 사퇴에 대한 여야의 다른 관점 심지어 한 문장의 문자에 대한 남녀의 해석전쟁까지. 우리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 본질이 달라지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이런 세계의 다원성과 해석들의 갈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성찰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이다.





니체의 관점주의

Nietzsche.gif▲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Nietzsche, Friedrich Wihelm
 

영화 <라쇼몽>은 니체의 '관점주의'를 떠오르게 했다. 니체는 보편적 진리(불변의 진리)를 찾아 헤매는 기존의 철학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며, 세계는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관점주의를 내세웠다. 그는 "모든 실존은 본질적으로 해석적 실존"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내가 존재하는 한 내가 보는 세계도 존재하고 내가 아닌 타인이 존재하는 한 그가 보는 세계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1. 

니체는 다양한 세계관과 다원적인 사유가 공존하는 현 시대를 예견하며 관점주의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나의 진리와 너의 진리는 다를 수 있다. 옳은 가치를 매기는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서로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또 "사람들은 많은 사람과 일치하려는 좋지 않은 취미를 버려야 한다."는 니체의 말처럼 서로의 간극을 좁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상태 그대로의 긴장도 괜찮다. 갈등도 다툼도 괜찮다. 하지만 그는 모든 해석이 동등하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니체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자신의 해석에 대한 책임이었다. 보편적 진리는 있을 수 없지만 책임감을 동반한 해석의 지속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해석을 일관성있게 유지 할 수 있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라쇼몽>에 등장하는 네 증인 중 누가 더 가치있는 해석을 했는지 우리는 더이상 알 수가 없다. 뒤이은 후속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영화는 끝이 났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의 진술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도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계속 된다. 엇부딪치고 모순 된 진술 속에서 자신의 자신의 해석과 입장에 책임을 져야할 필요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Reference

이미지
네이버 영화 라쇼몽 포토


자료
네이버 영화 라쇼몽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니체의 관점주의, 이상엽


[박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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