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통의 승화, 프리다칼로 전시회

글 입력 2015.07.0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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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포스터 (2015.06.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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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면서 밤을 지샜다. 친구 J가 말했다. 나는 요즘 여성학에 관련된 책을 다 사고 있어. 나중에 대학원에 가서 여성학 공부도 하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야. 내가 페미니즘을 조금 알게 된 건 <역사 속의 성, 영화 속의 젠더>라는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여성영화제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오는 것이 수업의 과제였다. 신촌 아트레온에서 열린 여성영화제에 갔다. <왕자가 된 소녀들>을 보았고 그 잔상이 온몸에 남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대강 휘발되고 플롯과 인상 깊은 장면 정도가 남곤 했는데 <왕자가 된 소녀들>은 달랐다. 1950년대 공연계를 풍미했던 여성국극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펼치는 남장여자들의 사랑 이야기. 대중을 열광하게 했던 조금앵과 김진진 같은 배우들과 여자 열성 팬들. 그들이 어떻게 흥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이후 나는 여성영화제에서 서포터즈를 하게 됐다. 나에게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영화는 <왕자가 된 소녀들>이 그 기준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강렬한 방향성을 제시해준 영화기도 했다. 인천까지 한시간 반 정도가 걸렸지만 여성영화제를 하면서 그 곳의 문화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서로가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러 나이로 서열이 정해지고 권위가 생기는 문화를 탈피했고 그곳에서 본 영화들은 모두가 여성이라는 커다란 묶음 아래서 소수자를 대변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여성영화란 곧 소수자의 목소리를 말하는 영화였단 것을 알았고 나 스스로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여성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프리다 칼로. 이번에 전시회를 한다기에 보고 왔다. 집 앞에 공원이 있어서 다른 동네 공원을 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 올림픽 공원도 처음 가봤다. 큰 호수와 그 길을 둘러싼 나무들, 산책로. 자전거 대여나 다른 놀 거리가 있었고 그늘도 많아 쉬기 좋아보였다. 친구와 가서 둘다 똑같이 말했다. 여긴 남자랑 와야 해. 애인이 없는 친구는 씁쓸해했고 애인과 싸운 나도 울적하긴 마찬가지였다. 200미터쯤 걸으니 소마미술관이 보였다. 키가 작은 건물에 정이 갔다. 휘황찬란한 고층 빌딩을 보면 가끔 좀 위협적이란 생각이 든다. 내부는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프리다칼로와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생애가 나란히 설명되어 있었다.

 프리다 칼로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졌고 그 때문에 나무다리 소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육체적 고통은 열 여덟에 그녀를 덮쳤다. 1925년 가을, 하굣길에 오른 버스와 전차가 부딪히면서 칼로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녀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강철봉이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 나왔고 소아마비로 불편했던 오른발은 짓이겨졌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강철봉이 자궁까지 건드려서 그녀는 훗날 유산을 세 번이나 하게 된다.
 칼로는 꼬박 9개월을 전신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이 사고로 자신은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 고 표현했다. 꼼짝 없이 누워있는 동안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거울 속의 자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벽화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와 이어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스물 한 살 연상인 디에고 리베라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는데 디에고 리베라는 결혼 전에도 후에도 여성 편력이 끊이질 않았다. 이념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프리다칼로와 디에고리베라는 합이 잘 맞았지만 서로만을 충실히 사랑하는 인연은 될 수 없었다.

 프리다 칼로는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고 다니면서 조각가, 사진작가 등의 애인을 두기도 하였고 동성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였다. 미술가로의 입지가 공고해졌고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유럽과 뉴욕을 오가면서 전시회를 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에서 나를 이끌었던 건 칼로의 눈빛이었다. 공허하고 쓸쓸하지만 강단 있는 눈빛. 그림들은 하나 같이 쓸쓸하면서도 강렬했고 멕시코의 색깔이 돋보였다. 디에고 리베라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그림은 소시민을 향한 애정이 드러나있었다. 따뜻했다. 프리다칼로와 디에고리베라의 그림 외에도 멕시코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같이 간 친구는 최근 본 전시회 중 가장 좋았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녀는 육체적 고통으로 한 평생을 괴로워했다.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남자에게서 배신을 당하며 정신적 고통 또한 극심했다. 고독한 자신에 대한 번뇌 또한 그녀를 옭아맸다. 그 모든 괴로움을 프리다 칼로는 오롯이 그림에 쏟아부었다. 그림과 혁명, 그녀의 두 가지 과업은 그래서 존재만으로도 의미있는 것이다. 더불어 여성이자 신체적으로 불편한 이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세계를 누비며 살았다. 디에고 리베라에 기대어 살지 않고 그녀 스스로 사회 운동에 나섰다. 죽기 전까지도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해 사회적 참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녀다.

 그녀의 일대기를, 읽어보아야겠다.





일시  2015. 6. 6.(토) ~ 2015. 9. 4.(금)
주최  조선일보, 국민체육진흥공단    
주관  소마미술관, PIALUX INC, 한솔BBK 
장소  소마미술관 1~5전시실      
문의  02-801-7955
관련 홈페이지  (프리다칼로 전시회) (인터파크 티켓예매)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


[김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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