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줘서 고마워요, 소설 < 퀴즈쇼 >

글 입력 2015.07.0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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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jpg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받아왔잖아.
부모, 선생, 광고, 정치인 심지어 서태지까지 우리한테 '네 멋대로 하라'고, 
원하는 걸 가지라고, 그렇게 부추겼잖아.
피아노 조금만 잘 치면 음악하라고 하고, 글 좀 잘 쓰면 작가 되라고 하고,
영어 좀 잘하면 외교관 되라고 하고....
언제나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아.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데 그 '하나'를 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결국 사람들을 자꾸 실망시키고,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아."(306)



-어렸을 때의 나는 누가 나에 대해서 물으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줄 알고 
온 힘을 다해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그저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는 거였다.
적당한 대꾸만 해주면 그들은 즉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뻔한 질문만 입력된 사이보그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사이보그들은 젊고 만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단 몇 개의 질문으로 버틴다.
넌 취직은 안 하냐, 국수는 언제 먹냐 등등.(305)
 






청춘을 떠올리며 썼다는 작가의 말대로,
퀴즈쇼를 좋아하는, 스물 일곱 이민수의 이야기 <퀴즈쇼>에는
내가 공감할 만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두루뭉술하게 품고 있던 생각들이 아주 구체적인 단어들로 나타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소설답게 극적인 장치들이 이야기 곳곳에 있지만, 
인물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매커니즘으로 움직이는 덕분에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다.

웬만한 이야기꾼이 아니고서야 장르도 계속 바뀌고, 이리저리 통통튀는 이 스토리라인을 설득력있게 끌고 가기 힘들 것 같다.
책을 읽고나니 김영하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 균형과 설득력이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조금 흔들린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
처음부터 줄곧 이야기가 쫀쫀하게 흘러갔기에 결말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갔는데, 
기대치에 비하면 결말은 평범평범하고, 
떡밥을 실컷 뿌려놓고 수습하지 못한 드라마의 마지막회처럼 이야기를 묶는 데에 급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특히 후반부에 민수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좀 더 친절하게 설명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사실 스토리텔링이 어떻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앞서 말했듯 '공감'이다.


인상깊은 부분을 쓰다보니 굉장히 부정적인 내용들만 옮겨적게 됐는데, 
시종일관 시니컬하거나 부정적인 분위기인 소설은 아니다.
적당히 유머도 섞여 있고, 로맨스나 낭만도 섞여 있는데, 
그러다가 툭 튀어나오는 저런 문장들이 유독 와닿았다.
패배주의에 빠져있지도 않고,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겠다는 압박도 없다.


위로하는 척, 다 알고 있는 척하지 않는 <퀴즈쇼>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정말 괜찮은 위로가 되었다.







+) <난쏘공>의 저자, 조세희 작가의 인터뷰 하나를 잊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책이 더이상 잘 팔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나 팍팍한 현실을 그린 책이 몇 십 년째 사랑받는 것은 현실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것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김영하 작가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민수가 어디엔가 살아있다면, 벌써 35살이다.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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