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3) 아프리카 현대미술전 [회화, 가나인사아트센터]

글 입력 2015.06.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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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현대미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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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OR NEVER

아프리카 그림이나 조각에는 눈을 반쯤 감고 있거나
혹은 반쯤 뜨고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되어 마음이 어지러워질 수 있으니
눈을 반쯤 감고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눈을 꼭 감고 있으면,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되어 마음이 닫힐 수 있으니
눈을 반쯤 뜨고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NOW OR NEVER!

다수의 시선에 눈을 반쯤 감아보자. 소수의 시선에 눈을 반쯤 떠 보자.
하나의 길을 선택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것이 삶이다.
선택하지 않은 길은 가지 않는 길, 가지 않는 세계로 남게 된다.
어떤 눈을 열고 닫을 것인가! 어떤 시간을 선택할 것인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전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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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가팅가(E.S.Tingatinga)_60x60cm_gloss on canvas


Edward TINGATINGA

고대 암각화를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팅가팅가

탄자니아 / 1932~1972


#. 팅가팅가(E. S. Tingatinga)는 어떤 작가인가?

팅가팅가(Edward Saidi Tingatinga, 1932~1972)는 B.C.3000년경의 고대 암각화의 원시적 동물들을 현대적인 만화적 기법으로 풀어낸 탄자니아의 예술가이다. 팅가팅가는 평소 도심을 거닐면서 대부분의 미술품들이 콩고에서 수입되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탄자니아의 예술가들은 왜 그림을 그리지 않는가! 이러한 단순한 사고로 팅가팅가의 운명적인 예술적 삶이 시작된다. 

팅가팅가의 그림은 강렬한 원색의 색채와 간결한 형태, 하나 또는 반복으로서 아프리카의 어우러짐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팅가팅가의 가슴속에 지녀온 아프리카를 그린 것이다. 그의 그림은 외국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일으켰고 특히 유럽인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아 1972년에는 런던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그 해 어느 캄캄한 밤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화려한 삶의 문턱에서….

황무지와 다름없던 그곳에 씨앗을 심고 숲을 만들어내어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 선구자로 불리우는 팅가팅가, 사후 그의 제자들은TACS(Tingatinga Arts Cooperrative Society)을 설립하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꾸준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작업환경은 여전히 열악하지만 그 안에서 창조되는 팅가팅가 스타일의 작품들은 언제까지나 아프리카를 방문한 이방인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 팅가팅가(E. S. Tingatinga)의 그림읽기

1. 스쳐지나가는 것들의 영혼을 재구성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눈빛은 보는 이의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다. 야생에서 연약한 짐승이 궁지에 몰렸을 때 마지막으로 내뿜는 독기, 그것이다. 두렵지만 확고하고 슬픈 그 눈, 작가는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어린 시절 영혼으로부터 경험했던 것들을 예술적 형태로 전환시켰다. 아마 우리기 그림에서 본 눈빛을 그가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스쳐가는 것들의 영혼을 그림으로써 그들이 지켜지길 소망했다.

2. 사막에 씨앗하나를 심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그림이지만,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확신 하나로 출발했다. 팅가팅가는 예술, 특히 회화에 있어서 황무지나 다름없던 탄자니아에 씨앗을 심고 숲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내어 다른 이들이 그 길을 계속 걸어 갈 수 있게 해준 선구자이다. 그는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으며 함께 어우러져 사는 법을 아는 아프리카인들의 정신을 그림으로, 그가 살아온 생애로 보여주었다. 

삶은 구름 같은 것이라고 말하던 팅가팅가, 그의 삶은 구름이었을지 모르나 그의 예술은 영원한 빛을 발산하는 태양이었다. 1972년 팅가팅가는 죽기 전 런던에서 전시회를 갖게된다. 서구 미술계에서 아프리카의 미술을 알릴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되지만, 곧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평소 삶은 구름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던 팅가팅가, 자신의 이른 죽음을 예견하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천재적인 미적 재능은 결국은 죽음이라는 이름 앞에 무색하게도 빛을 잃고 만다. 하지만 그의 삶은 구름이었을지 모르나 그의 예술은 TACS(Tingatinga Arts Cooperrative Society)에 의해 여전히 또 영원한 빛을 발산하는 태양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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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베(I. Kebe)_50x150cm_acrylic on canvas


IBRAHIMA KEBE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바로 꽃, 그 자체 
꽃으로 사랑을 전하는 케베

세네갈 / 1955~

Point _ 케베(I. Kebe)의 그림에는 꽃을 든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꽃으로 사랑을 말한다고 하지만, 녹록치 못한 아프리카의 현실에 서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것, 그자체가 꽃이란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버지, 엄마, 아이들 모두가 서로에게 꽃인 것이다. 


# 케베는 누구인가

케베는 미술을 시작할 때부터 색의 조화에 대하여 탁월한 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과 흰색을 이용하여 색조를 변화시키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이는 마치 고갱이나 마티스가 색을 통해 자신의 그림에게 어떤 통일성 내지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여기에서 케베는 진실과 거짓 혹은 선악의 문제를 색조의 차이로 보면서 색의 다양한 결합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 케베의 이데아

케베의 그림에는 꽃을 든 여자와 남자가 많이 등장한다. 그에게 있어 꽃은 인연의 끈을 맺고픈 마음일 수도 있고 혹은 욕구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서 케베의 꽃은 한가지 의미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라는 현실은 녹록치 않기에 누군가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꽃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케베는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형태와 주제가 단순하다. 꽃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춤을 추고, 키스를 한다. 순수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꽃을 매개로 하여 우리의 삶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케베 그림의 네가지 코드

1.케베는 일상에서 인간의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케베는 반복되는 시장의 일상을 통해 군중속의 고독이나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순수함과 성실함을 담은 얼굴이나 대화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삶에의 시선을 희망과 행복으로 돌린다. 

2.인물들의 긴 목은 아프리카의 복잡한 심리를 담고 있다. 긴 목은 신 혹은 하늘에 가까워 지고 싶은 종교적 의미를 이탈하고 있다. 개인의 존엄성 내지는 개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남 의 주목끌기를 좋아하는 아프리카 사람들 내지는 케베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3.케베의 세계관은 인간성을 지향한다. 케베는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을 반대한다. 절대적 가치를 강조하기보다 상대적 가치를 탐색하는데서 인간의 존재의미가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중시하면서도 개체의 의미를 역설하고, 인간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특별히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하고 있다.

4.케베는 악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을 지향한다. 케베는 선과 악에 대하여 닫힌 시각을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의 전통의식을 비판한다. 악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악을 비난하고, 선을 절대화시키기 위하여 악을 부정하거나 도구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사회적 희생양이 만들어지는 것도 결국 선악의 소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 케베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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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J.Cartoon)_100x150cm_acrylic on canvas


JOSEPH CARTOON

다양한 색채, 다양한 문양은 욕구의 내용
일상에의 소망을 색채와 문양으로 풀어내는 카툰 

케냐 / 1976~


Point _ 카툰(J. cartoon)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네 개만 그린다. 자신의 부족한 하나를 인지하면,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카툰이 말하는  ‘아프리카의 똘레랑스’인 것이다

# 카툰의 어떤 작가인가?

카툰(1973~ )은 대부분의 케냐 작가들처럼 와두(Sane Wadu)가 미술운동을 전개한 응제차(Ngecha)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에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목탄이나 연필에 불과했지만, 그런 재료를 오랫동안 사용한 것은 오히려 기본기를 다지는데 유용했다. 그리고 그림에의 열망을 키워나가는데 촉매로 작용되었다. 
카툰은 타니(Shine Tani)를 만나면서 내재되어 있던 예술적 재능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케냐의 미술대학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천재적 작가들의 역량을 키워줄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카툰이나 젊은 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미대에 들어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닌 재능이나 열정에 비해 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1994년, 카툰은 나이로비에 있는 와타투(Watatu) 갤러리의 루쓰(Ruth Schaffner) 관장 덕분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18살 때의 일이다. 1995년, 미국에서의 전시를 필두로 캐나다, 프랑스, 독일, 덴마크, 일본 등 국내외에서 50여회의 단체전과 8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99년,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Contemporary African Art(Thames&Hudson) 표지에 카툰의 그림이 실렸다. 2001년에는 영국의 ROSL(Royal Over Seas League) 공모전에 당선되었고, 2005년에는 East Africa Art Biennale에 케냐를 대표하는 작가로 초청되었다. 
카툰의 그림은 얼핏 전통을 계승한 것 같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분히 현대적이다. 사회 공동체보다는 가족의 화합이나 소통, 남녀의 사랑이나 개인의 욕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색에 대한 관념 역시 전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흰색이나 붉은색은 더 이상 신이나 인간을 대변하는 색이 아니다. 그에게 색은 그저 색일 뿐이다.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풀어나가는데도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세계미술계가 카툰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카툰 그림읽기

1. 큰 손과 큰 발은 삶에 대한 태도와 의식의 내용이다. 
손과 발이 유난히 큰 카툰의 그림은 아프리카 앤티크 조각에 나타난 의미와 궤를 같이한다. 큰 손은 부지런한 생활을, 큰 발은 안정적인 생각을 뜻하는 것으로서 한 집안의 가장이나 지도자가 지녀야 할 윤리적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큰 손에서는 삶의 태도를 큰 발에서 의식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툰이 꿈꾸는 희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2. 다양한 문양이나 동일한 문양의 반복은 카툰이 지닌 꿈과 비례한다.
카툰에게 있어 문양은 문자와도 같다. 그림에 다양한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은 그만큼 바라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의 희망은 서로 다른 세계들 간의 어울림이다. 동일한 문양을 반복해서 패턴을 형성시킨 것도 결국 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40여 종족으로 이루어진 케냐, 카툰은 그림 속의 다양한 문양이나 동일한 문양의 반복을 통해 자신의 꿈을 얘기하고 있다. 

3.물고기, 항아리, 집 등은 일상에의 소망을 담은 꿈의 구체적 내용이다.
카툰의 꿈은 현실적이다. 물고기는 더 이상 종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토템이 아니라 음식일 뿐이다. 항아리는 신의 눈물을 담는 성스러운 도구가 아니라 물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둥근 집이 아닌 현재라고 하는 사각형 모양의 집에서 가족의 행복을 꿈꾼다. 그렇다고 카툰이 전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행복은 과거에서 온 것임을 잘 알고 때문이다. 


* Interview. 작가에게 물었다. 왜 손가락과 발가락을 네 개만 그렸냐고... 작가는 네 개의 손가락에 대해 손바닥에 가려진 엄지손가락을 이야기했다. 다섯 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가락 하나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작가는 대답을 못했다. 그러나 전혀 낯설어 하지를 않았다. 자신은 네 개라는 숫자가 좋아서 그렇게 그렸다고 한다.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네 개를 그린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모두가 그의 세계인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한다. 의식의 내용에 자신이 잘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끔 잊는다. 카툰은 드러나지 않은 한 개의 손가락과 한 개의 발가락을 통하여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 혹은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희망한다. 자신의 부족한 하나를 인정하는 것, 그것은 남이 지닌 부족한 하나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카툰은 네 개의 손가락과 네 개의 발가락을 통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은연중에 학습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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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츠(N. Douts)_99x99cm_acrylic on canvas


NDOYE DOUTS

모든 것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그 모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100-1=0”을 통해 정체성을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는 두츠

세네갈 / 1973~

#두츠는 누구인가?

두츠(N. Douts)는 1973년, 세네갈에서 태어나 다카르 국립예술학교에서 “서민 지역의 무질서 건축연구”라는 논문으로 수석 졸업을 했다. 2000년, 아프리카 비엔날레 ‘젊은 작가 모음 전’에 참여하면서 갤러리 기획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설치미술 “TRAIN-TRAIN MEDINA (Medina의 지루한 일상)”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프랑스 TV5와 벨기에 RTBF 방송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2004년에는 오랫동안 구상해온 작품 “100=1, 1=100”을 발표하면서 서구미술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2006년에는 다카르비엔날레에서 유럽연합 예술가위원회가 주는 대상을 받으면서 프랑스, 벨기에, 이태리, 스페인, 미국등 유서 깊은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2008년 3월, 한국의 아프리카미술관에서는 개관기념전으로 두츠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아프리카적인 수묵화의 감성을 느끼게 하여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은행과 기업이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워싱턴의 World Bank는 '100=1, 1=100'이라는 주제로 한 작품 100점을 모두 사들였다.

# 두츠의 100-1=0 _ 정체성 진화

두츠, 그는 현재진행형이다. 서민지역의 무질서한 집과 사람과 자동차를 만화적 팝아트로 그려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었다. 골판지와 신문지는 캔버스에서 자취를 감췄고, 가느다란 선과 아기자기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역시 그의 세계는 패턴인 아닌 패러다임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을 향한 여정(a journey to humanity)이 개인에로의 행복(a space to happiness)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2014년부터 등장한 “100-1=0”이라는 주제는 이전의 “100=1”과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전자가 두츠 개인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자는 공동체적 이데아의 내용이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구조가 증폭된 2013년, 그는 역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전과는 많이 다른 그림이 2014년도에 등장하게 되었다.

# 100=1에서 100-1=0로

두츠에게 있어서 ‘100’은 완전한 세계일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픈 욕구의 모습일 수도 있다. ‘1’은 정체성과 관련되는 수이고, ‘0’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100-1=0”에서 ‘100’ 즉 세상 모두를 다 소유한다 할지라도, ‘–1’ 즉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0’ 즉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는 것이 두츠의 지론이다. 이전의 주제인 “100=1”에서는 ‘100’과 ‘1’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이 강조되고 있다면, “100-1=0”에서는 정체성의 문제의 관련하여 ‘1’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 욕구와 이상의 경계에 서 있는 두츠에게 ‘1’은 현실과 점점 타협하고 있는 자신이 본래의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동심 혹은 순수성과 맞닿아 있다. 변화하는 가운데 변화해서는 안 되는 것,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자신의 정체성 즉 ‘1’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작은 차에서 큰 차로

두츠 그림에 등장하는 큰 차는 그의 딸과 관련이 깊다. 유치원에 갈 때,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어린 딸이 애처로워 차를 장만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큰 차는 아이를 생각
하는 아빠 마음의 크기와도 같은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두츠 자신이 파리에서 차를 소유했다는 자기 과시 혹은 욕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식으로 큰 차가 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그림에는 큰 차가 여러 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카르에서 차를 구입한 것이 은연중에 그림으로 옮겨 간 것 같다. 파리와 다카르 두 곳에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좋은 차를 원하고 있다. 이제 두츠는 개인의 욕구와 관련하여 자기의 그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큰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 집에서 빌딩으로

이제 두츠는 괴롭고 어지러운 싸움을 해야만 한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다카르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 지역의 무질서한 모습과 누추한 집들은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거대한 빌딩의 숲에 가려 그자체가 미미해지고 있다. 환경의 변화는 거대한 벽이 되어 두츠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그림은 그저 패턴의 변화로 남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봐야만 한다. 가난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던 그 무엇을 표현한 예전의 그림처럼, 더욱 더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츠에게 거는 기대는 여전히 크다. 그의 욕망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닿으려는 순수성과 잠재성이 더욱 강하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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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릴랑가(G.Lilanga)_85x85cm_gloss on canvas


GEORGE LILANGA

생명의 근본과도 같은 언어, ‘우리’를 화폭에 
세상만사를 동화적 심성으로 풀어낸 릴랑가

탄자니아 / 1934~2005

Point _ 아프리카의 현실은 괴롭고도 어지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릴랑가(G. lilanga)는 그런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한 편의 푸닥거리를 그리고 있다. 배가 볼록하면서도 큰 입과 큰 귀를 가진 우스꽝스러운 배우들을 통하여 절망의 무대를 휘젓는 것이다.


# 릴랑가는 누구인가

탄자니아의 릴랑가(1934~2005)는 서구미술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전통에 집착하지 않는, 즉 마콘데(Makonde)족의 조각과 팅가팅가(Tinga Tinga)의 그림에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은 작품 활동을 함으로서 아프리카 현대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서구미술계에 주목을 끈 이유는 1978년 워싱턴 IMF 홀(World Bank)의 전시에서 아프리카의 신화와 일상을 동화적 심성으로 풀어내면서 아프리카적인 캐리커쳐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20개국에서 40여회의 개인전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일본에서만도 아홉 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그리고 미국의 낙서화가인 키스 해링(Keith Haring)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 릴랑가가 그린 그림은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전형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릴랑가는 기존 작가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왜냐하면 다른 조각가들은 나무의 색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릴랑가는 다양한 색을 칠하면서 해학적인 요소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나무(ebony)에 색을 입히거나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릴랑가는 색을 미적인 관점으로 보면서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전통이나 금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운 삶과 영혼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역시 조각에서 표현하기 힘든 형태의 유연함을 그림에서 찾고, 그것을 삶과 의식에 적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에는 인간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 릴랑가 그림의 세 가지 코드

1.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욕구를 긍정해야 한다.
서구식 표현을 빌리자면 쉐타니는 악마이고, 동양식으로는 도깨비이다. 그러나 쉐타니는 악마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니다. 큰 귀와 입 그리고 볼록 나온 배는 인간의 욕구를 긍정하고픈 마음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릴랑가는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경계한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일수록 개개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귀와 입을 크게 표현하였고, 올챙이 같은 배는 공동체의 이익만큼이나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욕구의 긍정은 삶에의 의지와 직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릴랑가의 쉐타니는 영감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2.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조화와 결속은 인간의 존재의미를 깨닫게 한다.
수많은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어우러진 우자마 조각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릴랑가는 이것을 회화로 풀어내면서 삶의 지혜와 농담으로 가득한 아프리카적인 캐리커쳐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때 릴랑가는 원색을 과감히 사용하고 형태를 더욱 유연하게 함으로서 전통을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색채와 형태를 통하여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하기도 하였다. “아프리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슬플 수도 있지만 행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에의 무관심이 오히려 삶을 즐겁게 만들 수도 있다.”는 데서 그의 그림은 현대미술은 물론 사회비평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3. 삶에 대한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마피코는 춤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두려운 대상을 뜻하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마콘데족의 성년식에서 마피코를 향한 젊은 남녀들의 격렬한 몸짓은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이겨내려는 삶의 의지와 도 같다. 그런 점에서 릴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삶에 대한 역동적인 태도를 강조하기 위함다. 이런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간의 삶과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피코 의식은 현실을 극복하게 하는 고도의 드라마와도 같은 것이 된다.

# 릴랑가의 이데아

70~80년대의 아프리카는 정치적인 이념이나 전통적인 미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릴랑가는 반역(?)의 길을 걸었다. 전통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정치성을 띠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강조하기보다는 개인의 욕구와 현실을 중요하게 취급했으며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보였다. 인간은 선 혹은 악에 기울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악이 인간의 욕구를 실현시켜 줄 수 있다면, 그곳에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 릴랑가의 그림에 자동차나 핸드폰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현대문명을 제대로 누리는 데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당뇨합병증으로 두 다리가 잘려지고 동료 작가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는 순간까지도 결코 붓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현대미술전


일자 : 2015.06.24 ~ 2015.07.13

시간 : 10:00-19:00

장소 : 가나인사아트센터 2-3층

기획 : 가나인사아트센터, 아프리카미술관





문의 : 02-732-3848

관련 홈페이지 (아프리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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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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