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혐오의 시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5.06.1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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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어디에나 대립은 존재한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지배자와 피치자의 대립, 
유산자와 무산자의 대립,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대립... 
그리고 그 대립에서 종종 발생하는 상호 간의 혐오(嫌惡)
 
최근 피부에, 가장 몸서리치게 와 닿는 혐오가 있다. 


바로 성별 간의 혐오다. 


 김치녀, 김치남, 여혐, 남혐 등 수많은 키워드로 대표되는 성별 간의 혐오는 그전부터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 그 수위는 심각할 정도로 높아졌다. ‘옹꾸라 발언’을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이 기폭제가 됐다. 현재 사회에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만지는 것과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도처에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지금도, 사실 두렵다.


판도라.png▲ 판도라는 식욕이 왕성하여 남자들이 농사지어 얻은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우고, 성욕이 왕성하여 남자들의 체력을 모두 빼앗았다고 묘사된다. 인간들에게 재앙을 주는 항아리를 연 것도 판도라다.



 성별 혐오의 가장 깊은 곳에는 대체 무엇이 존재할까. 전공자가 아니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것이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복수심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의 최초의 인간 여자 판도라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여성의 매력과 생산성에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남성들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스핑크스, 세이렌 등의 괴물들이 모두 여성인 것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런 역사를 고려한다면, 지금의 여성 혐오가 급격한 여권(女權) 상승으로 인해 기존의 강한 권력을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성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일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남성 우위의 역사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으며, 그것은 곧 여성 핍박의 역사 역시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세월동안 쌓인 분노와 한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직접 겪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와 관련된 글을 읽을 때마다 울컥하곤 한다. 이런 한의 역사 때문에 여성들이 복수심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동등함이 아니라 그 이상의 권리를 주장하고 ‘눈에는 눈’식의 역차별을 조장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양쪽 모두가 손을 내밀지 않는 한, 성별 간의 혐오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다. 여성 혐오는 남성 혐오를 낳고, 남성 혐오는 여성 혐오를 낳는다. 공감, 상상력, 이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이다.


이갈리아.png
▲ 이갈리아의 딸들.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의 목을 조르고 있다. 그러나 둘은 결국 한 몸이다.



 남자 여자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번 쯤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 있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이다. 남성과 여성이, 완전히 정반대인 세계의 이야기이다. 단어조차도 새로이 정의되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인 나조차도 몇 번인가 역겨움을 느꼈다. 남자들은 아마 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어떤 핍박의 역사를 견뎌왔는지,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차별이 어떤 것인지, 그녀들이 품고 있는 분노와 한을 단순히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너네도 겪어봐라’하는 식의 복수가 절대 옳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여자들은 피해의식은 버리고, 올라가기 위해 남자를 눌러 내리지 말고, 옳지 않은 압력에 맞서 당당히 쟁취하여 올라가야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더 이상 절대 군주처럼 군림할 수 없으며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올라오려는 여자를 눌러 떨어뜨리지 말고,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가야 한다.


 
마음을 더 열어봐 우린 같은 곳을 향해 가잖아 
모두 함께 영원할텐데
서로 다른 성일 뿐 존재하기 위한 인간인걸



 10년 전 보아의 노래 ‘girls on top’의 가사다. 여성이 우위에 서야한다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열어 서로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한다는 거다. 10년 전부터 외치고 있는데도 왜 닿지를 못하는 걸까. 조금만 더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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