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사를 통해 본 우리의 음주문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5.06.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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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나 영의정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조선 후기에 복음을 전파하러 왔었던 다블뤼 주교의 기록입니다. 정말 친숙한 모습이 아닌가요? 한국의 현재 음주문화와 별로 다를 바 없어보이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음주문화가 하루 이틀에 걸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기독교의 전통에 입각해 지나친 음주를 타락으로 생각하는 서양과 달리, 한국은 폭음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한국만의 음주문화는 어떻게 생긴 걸까요?
 


  한국의 음주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바로 우리의 ‘공동체 주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융성했으며 지금도 우리 사회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들어 있는 '유교'는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공동체 단합의 수단으로 술을 사용했던 것이지요.

음복.png▲ 사촌리 동제(마을 제사)에서의 음복.

  대표적인 예로 제사에서의 술을 들 수 있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유교적인 의례로 꼽히는 제사는 ‘집안’이라는 혈연적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을 연결하고, 친척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임으로써 혈육 관계를 확인하는 일을 하죠. 그리고 이 자리에 ‘술’은 절대로 빠질 수가 없지요. 제사에는 ‘음복’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조상들에게 바쳤던 술을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마시는 행위입니다. 여기에서 술은 죽은 자와 산 자, 산 자와 산 자를 연결해주는 매개가 되며 조상과 친인척 간의 연대를 다지는 기능을 합니다.

  혈육 간의 연대 뿐 아니라 정치적인 연대로서도 술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궁중에서는 정치적 교류를 위해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존재하는 ‘사발주’ 문화 역시 바로 이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에도 등장하지요.

“포의(布衣)로 있을 때에 중희당(重熙堂)에서 삼중소주(三重燒酒)를 옥필통에 가득히 부어서 하사하시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마시면서 ‘나는 오늘 죽었구나.’ 라고 마음속에 혼자 생각했었는데, 몹시 취하지 않았었다. 또 춘당대(春塘臺)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고권(考券)할 때에 맛있는 술을 큰 사발로 한 그릇 하사받았는데, 그때 여러 학사들은 크게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사발식.png▲ 고려대학교의 사발식 현장.

  이와 같이 정치적인 결속을 다지는 데 공헌하던 사발주는 일종의 통과 의례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사발주라는 의례를 치루고 서야 비로소 공동체나 조직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고려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의 사발식이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공동체의 결속을 굳건히 하고자 했던 조상들의 노력이 지금의 음주문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일종의 전통인 셈이지요. 물론, 파편화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정신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해가는 시대 속에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원형 그대로 지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지나친 폭음문화는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하니까요. 음주문화 전통의 정신과 의의를 살리되, 사회 변화에 발 맞추어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많은 생각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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