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Kill your darlings. - 날 위해 아름다운 글을 써줘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6.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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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 your dar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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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Kill your darlings⌟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직역하자면 ‘너의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라.’이고 번역하자면 ‘사소한 감정을 버려라.’이다.
 
 "킬 유어 달링"은 문학 영화로서 실제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과 뮤즈의 대학 시절의 실화를 다루며 그들의 운명을 뒤바꾼 충격적인 의문의 밤에 대해 말한다. 비트 세대는 1950년대 중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당시 사회와 문화에 저항했던 문학가들로 오늘날 대중과 청년 문화에 큰 변화를 만들어낸 시대적 아이콘이다. 그들은 새로운 문학의 창조, 환상적인 문학의 발전인 New Vision(신환상)에 미쳐있었고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동성애를 중심적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대략적 줄거리는 이렇다. 영화는 앨런 긴즈버그가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루시엔 카는 ‘뉴 비전’이라는 새로운 문학 운동을 이끄는 뮤즈로 매혹적인 인물이다. 또 다른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잭 케루악과 윌리엄 버로우즈도 마약과 재즈에 빠져 기성세대에 반항했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현재의 비트 세대를 있게 한 숨겨진 뮤즈와 그들을 천재 문학도로 만든 아이러니한 살인 사건까지 모두 생생하게 보여줘 ‘사랑’이 이들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한 작가(앨런 긴즈버그)가 자신의 길을 찾으며 전설이 되어가는 장면을 약간은 뒤틀린 사랑으로서 섬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문학. 사랑. 치기어린 마음이 유치한 발상을 세상에 다시는 없는 발명으로 여기는 때가 있다. 다만 그 순간은 장난 따위에 지나지 않으나 그런 말썽이 있기에 세상은 뒤바뀐다.
신환상. new vision. 그 환상에 닿을 수 없기에 우리는 사랑을 한다. 아주 환상적으로.
그 속의 섹슈얼리티가 가진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동성애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들의 종착점은 그 속에서 느껴지는 마음과 문학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새로움이 두렵게 여겨질 뿐.




2. 본문


각각의 등장인물을 통해 바라본 그들의 내면을 이론으로 분석해보았다.


(1) 앨런 긴즈버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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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버지에 대한 혐오

그의 가정배경을 먼저 살펴보자. 정신에 약간 문제가 있어 아들인 그에게만 의존하는 어머니와 시인인 아버지가 있고 그는 외동아들이다. 명문대에 합격한 후,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가족들과의 소통이 소원하게 된다. 그러는 중에 앨런은 아버지가 새 어머니를 맞이하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으로 요양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앨런은,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어머니를 달래며 아버지를 원망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근기 이전, 전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남아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 자신을 아버지의 위치와 동일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질투와 적대감을 가지는데 이는 곧 경쟁자인 아버지에 의해 신체적인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거세불안’으로 인하여 어머니와의 사랑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 애정은 미래에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만나는 소망으로 대체된다. 나는 앨런의 아버지에 대한 혐오가 오이디푸스 시기 때의 무의식적 감정과 겹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각별히 어머니에게 잘했고 오히려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더 친근하게 지내며 그 속에서 역할 동일시를 느껴, 동성에게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 동성애

그는 학교에서 자신의 삶을 크게 바꿀 신선한 영혼, ‘루시엔 카’라는 선배를 만나게 된다. 루시엔은 앨런을 데리고 다니며 서서히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앨런은 초반에는 루시엔을 친한 선배로 느끼지만 그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다.  


  3) 애증과 동일시

루시엔이 그의 옛 연인 데이빗을 홧김에 살인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앨런이 사랑하는 뮤즈인 루시엔을 위해 거짓진술을 하려다가 결국에는 사실을 말해서 루시엔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되돌려 생각해보면 어쩌면 라이벌이었던 데이빗이 자신의 모습일 수 있었기에 그는 선뜻 사랑하는 루시엔의 편을 들지 못한다. 루시엔이 데이빗처럼 자신도 홧김에 죽여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루시엔에게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신을 배신하고 그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배신감의 감정이 루시엔을 감옥에 가둔 것이다.   



(2) 루시엔 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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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가 동성애자가 된 이유 -“성장기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결여가 동성애를 만들다.”

루시엔의 성장기는 불안정하다. 그는 집안에서 거의 고아로 자라났다. 어린 시절, 부모가 불의의 사고로 모두 죽자 친척들은 어린 그를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그는 보육시설을 전전하다가 청소년시절 쯤, 그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보호자, 데이빗 캐머러를 만나게 된다. 데이빗 캐머러는 당시 혼자 살면서 아이를 보듬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들은 조금은 엇갈린 사랑의 단계로 발전 한다. 루시엔의 이러한 성장환경은 그가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우선, 프로이트의 남아 발달에 따르면 루시엔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한 남아는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초자아 발달을 실행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생물학적 남아는 ‘남성성’이라는 성별 정체성을 획득하며 사회적 기대에 맞춰 이성애 남성으로 살아가게 되고, 금지와 규율을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반대였다. 그는 부모가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삼각관계를 조성한 경험이 없었다. 그는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로 하는 유년기에 부모의 감정을 자신의 보호자 ‘데이빗’에게 대신 느낀 것이다. 유년기 최초 성 대상에게 느낀 강한 성 환상은 데이빗에게 집중되었다. 그 결과 거세 콤플렉스의 3가지 결과 중, 그는 sex, gender가 모두 남성임을 인지하고 성적지향(대상)도 남성이 된 것이다. 완벽한 동성으로서 그는 보호자인 데이빗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처럼 사랑했으며 삼각관계의 방해자가 없는 이상, 그대로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즉, 여성을 경멸하고 성기가 있는 남자를 자연스레 좋아하게 된 것이다. 


2) 이별폭력-살인사건

이별폭력이란 말 그대로 이별할 때의 폭력을 뜻한다. 이는 자존감과 자기애가 높을 때, 관계연습과 이별연습이 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연인 관계로도 설명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이 분리 할 때,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을 깊이 투사하여 분리해 나가는 순간의 서운함과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식은 분리하고 싶은 의무감과 분리해 나왔을 때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분리하는 것, 즉 ‘애도’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어야 사회생활이 비로소 가능해 진다. ‘부모’는 비로소 표상으로 남는 것이다.
 연인 관계도 이와 같다. 이별할 때의 ‘애도’를 통해 분리를 극복해야 하지만 루시엔과 데이빗은 그러지 못했다. 둘은 분리 불안에 대해 서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이는 루시엔의 극단적인 성격으로 결국 연인 데이빗의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 큰 범주에서 이별폭력의 부분으로 살인사건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애도를 잘못했다는 데서 생기는 불화는 같은 곳에서 출발하니까 말이다.


3) 대상a의 결여 - 연인이 계속 바뀌다.

 루시엔의 연인은 계속 바뀐다. 원래 그 자체로 풍기는 퇴폐적 매력이 루시엔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지만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그의 연인은 계속 바뀐다. 처음에는 그의 보호자 데이빗 캐머러, 다음에는 학교 친구 앨런 긴즈버그, 다음에는 선원 잭 캐루악이다. 루시엔은 자신이 한 번 사랑한 연인에게는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다. 라캉이 말하는 대상a와 같은 위치라고 생각한다. 욕망 도식과 사랑에서 대상a는 상징적 팔루스로서 어떤 것이든 다 될 수 있다. 얻으면 짜릿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충족해도 대상a와 주체간의 선은 절대 만나지 않기 때문에 욕망을 영원히 충족시킬 수는 없다. 충족하면 계속 또다른 새로운 욕망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완벽한 만족을 계속 추구하지만 대상이 그를 사랑하게 되면 가차없이 대상을 버리고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섰다. 그는 어쩌면 조금이라도 영원한 충족에 다가가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 살인을 택해 데이빗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3) 데이빗 캐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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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성애.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에게 사랑을 느낌.

홀로 살던 데이빗에게 아이는 엄청난 희망이었다. 삶에 지친 그는 자신만을 바라보며 환히 웃는 루시엔에게 바로 빠져든다. 점점 성장하는 루시엔에게 그는 사랑을 느끼고 이는 둘의 관계를 동성애 연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들 둘 사이의 사랑은 지독할 만큼 애증의 관계이다. 상대와 하나로 합일하고자 하는 욕망과 동시에 상대를 밀어내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는 악순환에 위치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과연 맞는 말이었다. 


2) 에리히 프롬의 능동적 공서적 합일 - 나를 위해 타인을 흡수하다.

에리히 프롬은 분리로 인한 불안 해소를 위해 공서적 합일을 주장했다. 내가 보기엔 데이빗은 공서적 합일 중에 능동적 형태로 루시엔을 소유하려고 했다. 그는 루시엔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서 고독과 갇혀 있다는 감정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다. 자신을  숭배하는 다른 사람을 흡수함으로써 그 자신을 강화하여 분리로부터 떨어지고자 했다.



3. 맺음말

그리스 시대의 고급스러운 사랑은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고 이것이 이성적인 사랑으로서 가장 가치 있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후 산업혁명과 기독교의 영향으로 이는 저급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 사랑이 왜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내가 알고 있는 이론들로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리고 그들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서 기뻤다. 

또한 문학적인 세계는 정말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고 무서운 세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기쁨과 감정의 소용돌이는 관람객을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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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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