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특집] Amuse in Play :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作)

글 입력 2015.05.20 17:0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Amuse in Play! : 햄릿 (Hamlet,1601)
 
 
글, 편집 - 서 지 예 (ART insight 편집팀)
 
 
 
2.jpg
('햄릿' 3막 2장에서 등장인물들이 배우들의 연극을 보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늘은 그의 대표적인 비극 작품 중 하나인 '햄릿'을 소개합니다. 천재적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사실 타 문학작품이나 극작품들을 각색한 것이 많다는 것 알고계셨나요? 오늘은 기존 햄릿의 이야기와, 의문투성이인 작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들도 풀어보려고 합니다!
 
 

 
 
<시놉시스>
 
 
tistory_com_20150520_172328.jpg
('데이비드 테넌트'의 햄릿 공연장면, 기도하는 클로디어스와 복수를 생각하는 햄릿)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부왕이 갑자기 돌아가신 이래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두 달도 채 못 되어서 작은아버지인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올랐고, 어머니 거트루드는 그 작은아버지와 재혼한 것이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라고 햄릿은 어머니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원망함과 아울러 작은아버지가 아버지를 독살한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혹을 씻어 버릴 수 없었다.
 
그때, 밤이면 부왕을 닮은 망령이 초소에 나타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햄릿이 기다려 보니까 정말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나타나, 자기는 작은아버지한테 독살당했으니 꼭 원수를 갚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분부에 따라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남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미친 체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왕의 정치 고문관 폴로니어스의 딸 오필리아를 향한 사랑 때문에 미친 것으로 여겼다.
 
바로 그 즈음에 극단이 이 왕궁에 찾아왔다. 이를 본 햄릿은 아버지가 죽게 된 음모를 담고있는 내용의 연극을 공연하도록 부탁했다. 왕이 친척인 루시아나스라는 악한에게 살해되고, 루시아나스는 왕의 자리와 그 아내를 빼앗는 내용이었다. 왕은 그 극을 보다가 중도에 퇴장해 버리고 말았다. 더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햄릿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따지고 들었다.
 
그때, 막 뒤에서 누군가 엿듣는 듯한 인기척을 느낀 햄릿은 그를 왕이라 짐작하고 칼로 찔렀다. 그러나, 그것은 폴로니어스였다. 왕은 그 사건을 구실로 햄릿을 영국에 보내려고 했다. 거기서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햄릿은 해적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귀국할 수 있었다.
 
한편,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즈는 햄릿에게 복수를 맹세하게 되고, 오필리아는 미쳐서 돌아다니다가 강에 빠져 죽고 만다. 햄릿이 돌아온 날은 마침 오필리아의 장례식 날이었다. 왕은 햄릿과 레아티즈의 검도 시합을 명하고, 비겁하게도 레아티즈의 칼 끝에 독을 발라 놓았다. 그러나, 시합이 치열해지자 칼을 떨어뜨리게 되고, 무의식 중에 칼을 바꾸어 들고 시합하게 되었다. 결국 레어티즈는 자기 칼에 찔려 죽으면서 왕의 음모를 밝혔다. 분노한 햄릿은 단칼에 왕을 찔러 복수를 이루지만, 자기도 그 칼에 부상당했던 터라 결국 죽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왕비인 햄릿의 어머니는 왕이 햄릿에게 먹이기 위해 잔에 독을 타놓은지 모른채 마셨다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주요 캐릭터>
 
ㅐ[ㅔ.jpg

 

 
 
 
 
데이비드 테넌츠.jpg

 
눈이 있습니까? 아름다운 목장을 버리고 이런 황무지에서 안식을 찾다니?
 
어이가 없군! 과연 눈이 있습니까? 설마 사랑이라 부를 수야 없겠죠.
 
-중략-
 
미치광이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거요.
하물며 아무리 광증에 자유를 빼앗긴 감각이기로서니
어느 정도의 식별력이 남아 있을 텐데, 이런 천양지차를 구별하지 못하시다뇨.
무슨 귀신한테 홀려서 눈 뜬 장님이라도 됐단 말씀입니까?
 
촉각이 없어도 시각이면, 시각이 없어도 촉각이면,
손과 눈이 없어도 청각이면, 다른 모든 것은 없어도 코만 있다면야,
아니 비록 병든 감각일지라도 한 조각만 남아 있다면
이렇듯 망령을 부릴 리는 없을 것 아닙니까!
 
 
 
 - <햄릿>에서 아버지를 배신하고 근친상간을 한 왕비를 향한 햄릿의 분노 ,
감정이 잘 드러나는 대사와 장면이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햄릿이야기의 바탕이 된 암렛이야기> 
 
크론보리성.jpg
(햄릿 엘시노어 성의 원형, 크론보리 성)
 
암렛의 아버지 호르웬딜과 삼촌 팽고는 덴마크 왕 로릭 밑에서 유틀란트를 다스리고 있었어요. 호르웬딜은 로릭의 총애를 얻었고, 로릭의 딸 거루타는 그의 부인이 되었으며, 그녀는 아들 암렛을 낳았죠. 형의 성공을 시기한 팽고는 그를 죽이고 거루타와 결혼합니다. 어린 암렛은 자신의 안전을 염려하여 팔푼이 행세를 하였고 그로 위험을 넘길 수 있었죠. 그는 그 후 구부러진 막대기들을 바로잡아 창을 만들었는데, 누가 물으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암렛의 행동은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왕은 그를 사로잡으려 하게 되었어요. 팽고 왕은 그가 진짜 미쳤는지 알아보려고 아리따운 여인을 지명하여 그와 불시에 만나도록 만들었지만, 그는 이복동생과 그 여인의 협력으로 이 함정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팽고의 친구 중에 의심 많은 자가 두번째 시험을 계획하였고, 암렛과 어머니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어요. 그 친구는 왕비 거루타의 침구 밑에 몸을 감추었으나 암렛은 미친 짓거리를 하던 가운데 그를 찾아내 그를 죽여 시체를 조각낸 다음 하수구에 버렸고, 돼지들이 그것을 먹어치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살인자와 근친상간 혼인을 한 어머니를 놓고 훈계조의 열변을 토하여 어머니를 회개시키고 자신의 광증과 복수 의도에 관해 진실을 털어놓았죠. 하지만 염탐꾼이 실종되자 팽고의 의심은 더 커졌으며, 그는 암렛을 처치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어요. 팽고 왕은 영국 왕에게 그의 사형을 지시하는 밀서를 두 호위병에게 주어 그를 영국으로 급파하였어요.그러나 암렛은 편지의 내용을 바꾸어 자기 대신 그들을 죽게 만들었으며, 왕에게 그의 딸을 자신과 결혼시키도록 요청하였어요. 모든 일은 암렛이 꾸민 대로 벌어졌습니다. 고국을 떠나기 전에 암렛은 어머니에게 열두 달 후에 자신의 장례를 치르도록 시켰어요. 지정된 날짜의 장례식 중간에 그는 돌아왔고, 조신들이 취할 때까지 주연을 베풀었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벽가리개 천을 그들에게 뒤집어씌우고 불을 지른 다음 팽고가 잠자는 방으로 갔어요. 그는 자기 칼을 팽고의 것과 바꾸었어요. 그리고 그의 삼촌이 깨어났을 때 '자기 자신의 칼로 너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라고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암렛은 백성들에게 웅변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였고 그들은 환호하며 그를 왕으로 맞이하였습니다.
 
 

 
 
셰익스피어2.jpg

극작가 : 윌리엄 셰익스피어 (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
 
셰익스피어는 탁월한 극작술과 천재성으로 현대까지 주목을 받는 영국 극작가이죠? 그의 극작술은 사실 로마 비극 작가인 '세네카 (루시우스 아내우스 세네카)'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특히 이번에 소개하는 <햄릿>은 더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세네카 비극의 요소로 남아있던 것들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또렷하게 등장하거든요. 첫번째로 유령이나 마녀들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무대위에서 행해지는 폭력장면들, 마지막으로는 독백과 방백의 사용이 있어요. 그리고 특히 복수가 주제로 사용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등장하죠. 세네카 연극의 요소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연극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만, 이탈리아 극작가들은 독백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영국에서는 독백이 오히려 인기 있는 하나의 연극적 관습이 되었다고 하네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천재적인 언어유희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원래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문들은 '약강오보격' 이라는 운율은 가지고 있어요. 언어의 리듬처리가 '약강 약강 약강 약강 약강' 이렇게 이루어지는 리듬인데, 아쉽게도 이런 시적 운율들은 원문의 영어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해체된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발성 시 들리는 소리까지 아름답다고 해요. 사용된 단어와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 그리고 리듬감만 인상적으로 꾸려 낸 것이 아니라 배우들에 의한 발음 발성의 청각감까지 우수해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는 그것들을 '단어로 된 음악'이라고 칭했답니다.
 
또한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삽화적 구조는 등장인물들과 극장면을 생생하게 구현해줍니다. 삽화적 구성은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다른 에피소드로 연결되는 구조를 말합니다. 예를들어, 햄릿이 홀로 독백을 하는 장면에서 궁안의 대신들이 모두 모이는 장면으로 전개되는 부분들을 생각해보면 되는데요, 셰익스피어는 이 부분들을 매우 능숙하게 처리하여 방금 전의 장면과 후의 장면의 대조를 이루거나, 내용을 상호 보충해주는 역할도 해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구조는 상상력을 불러온다고 하는군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던 입체감이 이런 점들 때문이였나 봅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jpg
(존 에버렛 말레이의 작품 '오필리아')

사실 천재적인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작품 전부가 그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예요. 그 시기 극작가들은 극작품들을 대중극장의 기호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종종 역사나 타 문학작품을 각색하곤 했어요.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헴릿>도 13세기 덴마크 역사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던 작품을 재각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의 중 다수에는 이탈리아 소설들이 각색되어 들어있다고 해요.
 
그는 생애 38편의 희곡과 소네트집을 남겼고, 세계 최대 극작가로 자리잡았어요. 그는 1595년부터 은퇴할 때 까지 챔벌린 경 극단의 일원으로, 1603년부터는 챔벌린 경 극단의 이름을 바꾼 왕실 극단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작품의 작은 역까지 도맡아 한 배우로도 명성을 날렸어요. <햄릿>에 등장하는 유령 역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합니다.^^
 
 

 
 
 
 
베네딕트 컴버비치.jpg 
( 배우 베네딕트 컴버비치의 햄릿, 공연 장면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는 것이 장한 것이냐,
아니면 환난의 조수를 두 손으로 막아 이를 근절시키는 것이 장한 것이냐?
죽는다, 잠잔다 ㅡ 다만 그것뿐이다.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번뇌며 육체가 받는 온갖 고통이며. 그렇다면 죽음, 잠,
이것이야말로 열렬히 희구할 생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잔다, 그럼 꿈도 꾸겠지. 아, 이것이 문제로다.
대체 생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한 잠을 잘 때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인지,
이를 생각하니 망설여질 수밖에 ㅡ
 
 
 - <햄릿> 中 햄릿의 독백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셰익스피어.jpg

영국이 낳은 최고 작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는만큼 그에 대한 논쟁들은 예전부터 제기되고 있었어요.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저자가 따로 있다" 라는 의혹입니다. 그는 1590년에 런던에 상경하여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챔벌리 경 극단의 공동 주주가 되었고, 개별 작품 및 사후 출판된 작품들까지 모두 표지에 그의 이름이 실려 있다는 점은 대부분의 연극사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가공인물이고 실제 작가는 따로 있을 것이다.' 라는 논쟁은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naver_com_20150520_213559.jpg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의혹은 그의 성장배경과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볼 때, 이렇게 천재적인 작품을 남길만한 역량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론에서 출발했어요. 이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난 수작을 남기려면, 적어도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재사여야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뿐만 아니라 이정도 수준의 작품이라면 적어도 당대 최상위층에 속한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어야 납득이 간다는 말도 있었어요.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그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정치적 음모로 서류상 죽음을 당한 후 가명으로 셰익스피어를 사용하며 극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억측도 있을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 문호이자 정치가, 그리고 철학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 , 그리고 제 17대 옥스퍼드 백작인 '에드워드 드 비어 경' 등이 실제 셰익스피어라는 주장들도 펼쳐지고 있죠. 또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모두 크리스토퍼 말로와 공동 집필된 것이라는 주장또한 나오고 있어요.
 
이런 의혹들은 현대까지도 계속되어지고 있지만,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였어요. 셰익스피어의 실체를 밝히려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논쟁을 이어나가겠지만, 그 또한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마리아게일.jpg tistory_com_20150520_172315.jpg
45.jpg google_co_kr_20150520_220633.jpg
(데이비드 테넌트와 마리아게일의 햄릿공연,
데이비드 테넌트와 마리아 게일의 이미지가 제가 생각했던
햄릿과 오필리어에 너무 들어맞아서 특히 이 공연 사진이 많아요.
죄송해요. 글쓴이 사심이 담겼네요..ㅋㅋㅋ)
 
햄릿이 복수를 결정한 후 겪는 내적갈등과 외적갈등도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셰익스피어 비극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인물의 고뇌, 그리고 그에 따른 비극이 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들도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햄릿의 이미지를 어떻게 떠올리느냐가 중요한 요점이 될 것 같아요. 우유부단하여 답답한 면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외로움이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답니다. 이미지! 목소리와 자세 말하는 톤의 변화, 그리고 표정과 눈빛까지 상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와는 다른 햄릿을 만나실 수도 있을거예요.^_^b
 
영국은 르네상스 시대 전반에 걸쳐 언어와 문학 분야의 개화기를 맞게 되었어요. 문학과 예술 분야 중에서도 연극은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죠.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극장가에 출현했을 때에 영국 무대는 이미 모든 발전의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위에서 셰익스피어가 사용했던 극작술인 삽화적 구조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 연극이 중세극 전통을 계승한 것이였죠. 또한 세네카식 극작술도 영국 극작가들이 즐겨 쓰던 기법이였어요.
 
이 시기에는 극작술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술도 급신장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연 배우들은 점차 희극과 진지한 인물 창조를 동시에 이뤘고, 운문도 훌륭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검술처럼 신체 훈련을 요하는 연기에도 능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해요. 또한 극단들의 조직도 서서히 안정적으로 외형을 갖추어 나갔고요. 한마디로 이 시기는 극작가와 공연자 모두를 위한 발판이 마련된 시기가 된 것이죠. 그래서 이 시기를 '현대 초기의 영국'이라 부르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소개하면서 다룰 거리가 참 많네요! 그래서 인지 이번 문화특집을 쓰고 나서야 생각난 것들도 있지만, 또 다른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다룰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아마 그럴거예요..ㅎ
 
 

 
 
이 다음편은 특별편입니다!
 
글, 편집 - 서 지 예 (ART insight 편집팀)
 
ART insight
Art, Culture, Education - NEWS
http://www.artinsight.co.kr/
 

[서지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