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가로, 결혼 축하해요! - 무악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공연]

글 입력 2015.05.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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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로.jpg




 지난 5월 8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무악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관람했다. 리골레토, 아이다, 일트로바토레 이후 4번째 직접 관람한 네 번째 오페라였다. 2년 만에 찾은 예술의 전당은 여전히 그 특유의 갓을 쓴 정갈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초대인만큼 좌석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좋은 자리였다! 공연 시작 40분 전부터 아무데도 안가고 쭉 앉아있었을 정도로. 그렇게 좋은 자리에서, 좋은 마음을 품고, 2시간 동안 좋은 공연을 감상했다. 


마르첼리나.png▲ 결혼을 방해하는 얄미운 마르첼리나와 화난 수잔나, 말리는 피가로. 총체적 난국이다.

 사실 내용에서는 조금 쇼크를 받았다. 피가로와 결혼하려던 마르첼리나가 사실 그의 어머니라는 게 밝혀지는 부분에서 말이다... 나 뿐 아니라 관객석도 다 놀랐다(내 뒤쪽의 누군가가 각색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확인 결과 원작 그대로였다). 옛날 사람들과 트렌드를 공유하는 느낌은 참 오묘했다. 동시에 ‘정말 세상엔 절대적인 게 하나도 없구나’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흔히 막장의 필수 요소로 알려진 '출생의 비밀'이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그냥 유머일 뿐인데, 우리나라 드라마는 그걸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세상의 모든 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일 뿐인 것 같다.


수잔나.png▲ 면사포를 만지작 거리며 행복해하는 수잔나. 새신부의 설렘.

 조금 생뚱맞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모두 관람한 후 내 머리 속에 도장처럼 선명하게 남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오페라에서는 으레 아리아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인데, 피가로의 결혼은 조금 달랐다. 배우들의 노래가 별로였다는 게 아니라, 노래도 좋았는데 연기도 매우 좋았던 거다! 특히 맨 처음에 피가로와 수잔나가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연기하는 부분이 정말 귀여웠다. 면사포를 들고 설레어 하는 수잔나에서 그녀의 마음속에 행복한 신부의 모습이 수십 번도 넘게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혼자 침대 매트 위에 누운 피가로가 옆에 수잔나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양에서는 새 신랑의 기대가 주체할 수 없이 부푸는 것이 보였다. 연기에 묻어나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나는 2시간 동안 그들의 옆에 쏙 들어갔다 올 수 있었다. 
 

홍소프라노.png▲ 홍혜경 소프라노(좌)와 류보프 페트로바(우).

 이미 세계 정상인 배우들인 만큼 아리아도 굉장히 좋았다. 수잔나 역의 배우 류보프 페트로바의 노래가 특히 내 취향이었다. 소프라노지만 가늘지 않은 힘 있는 목소리가 당찬 수잔나 역에 꼭 맞았고 귀에 잘 들어왔다. 홍혜경 소프라노와 둘이서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참 희한한 것은 그 아리아의 가사가 별다른 뜻이 없다는 거다. 가사를 많이 보는 내가 좋아할 만한 아리아는 분명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런 게 바로, 음악 자체가 가지는 고유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혜경 소프라노의 유려한 목소리와 섬세한 강약 조절은 백작부인의 아리아 ‘사랑의 신이여 위로를 주소서’에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그녀의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배어있었다. 그리고 분명 얄미운데 멋있었던 알미바바 백작 역의 라이언 맥키니! 바소 부포(basso buffo) 역인데도 불구하고 위엄 있는 모습과 목소리가 과연 귀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했다.
(무엇보다 깜짝 놀랐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로 쳤던 곡이 피가로가 장교로 임명된 케루비노를 놀리며 부르는 ‘이제는 날지 못하리’ 였다는 사실!)


 물통에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처럼, 내 삶에 또 한 방울의 예술작품이 차올랐다. 놀랍고, 귀엽고,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던 ‘피가로의 결혼’을 축하하며, 그들의 삶이 앞으로도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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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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