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체홉, 여자를 읽다 : 현재의 그녀들을 꿈꾸며

글 입력 2015.05.1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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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여자들.

하나. 여성들은 각기 다른 옷을 입고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둘. 여자에게 로맨스는 환상이고 그래서 더욱 갖고 싶은 욕망이다. 게다가 그 로맨스에 대한 욕망이 금지된 사회와 만난다면 더욱 간절해진다.





이 두 가지 자명한 사실들을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인 19세기 러시아에서 말한 이가 있다. 바로 ‘안톤 체홉’ 이다. 이 연극이 만약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우리는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구식적인 이야기라며 무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홉, 여자를 읽다’ 의 원작이 200여년도 훨씬 전에 이야기 되었던 내용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작품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이다.

네 가지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체홉, 여자를 읽다’는 옴니버스구조를 띄는데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세 여성을 중심으로 상황마다 드러나는 여성의 숨겨진 혹은 숨겨져야 하는 욕망을 표현해낸다. 먼저 첫 번째 에피소드인 ‘약사의 아내’ 에서는 늙고 못난 남편을 둔 젊은 아내가 약을 사러 온 (혹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한) 두 군인들과의 새벽에 짧은 만남을 표현한 부분이다. 이 때 젊은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여성스러움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고 남편이 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젊은 여성이 느끼는 로맨스는 달콤하고 그렇기에 너무 짧기도 하다.

아가피아는 조신하고 조용하고 그렇기에 그녀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새로운 로맨스’에 대한 갈망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량과 같은 가진 것 없는 사프카에게 빠진 그녀는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오직 그 만을 바라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사프카가 오직 그녀를 바라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 여성 인물 중 가장 영리하고 가진 것 많아 보이는 소피아 마저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가진 것 없는 일리인과 오래전부터 사랑해 온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안드레이와 결혼 하게 되는데 쉽사리 마음을 정리하지 못해 일리인의 마음을 거절 하지 못한다. 급기야 그녀는 안드레이에게 이 곳을 떠나자고 하지만 배려 없는 안드레이가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을리가 만무하다.
 
결국 각자의 이유와 각자의 괴로움으로 세 여자는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같이 서있게 된다. 물론 그들의 각자 파우치를 들고 말이다. 그 파우치 속에는 돈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화장품이나 옷가지들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혹은 감자나 먹을 것 따위가 들어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급히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녀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다. 그녀들이 들고 있는 것은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진정한 ‘로맨스’를 찾기 위한 욕망이라는 것을 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성의 로맨스에 대한 추구는 이제 당연한 욕망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기 있는 로맨스 영화들과 드라마들이 여전히 여성들의 로망이고 대리만족의 요소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로맨스에 대한 욕망은 이제 누구나 아는 것이 되었다.
 안톤 체홉도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을까. 200년도 더 지난 현재 여성의 파우치는 숨겨두는 대상이 아닌 자신을 표현하고 어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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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성이 탄 기차가 긴 시간을 달려 오늘에 종착하였다면,
더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사랑을 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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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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