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정의 달 5월 객석음악회 - 라이징스타

글 입력 2015.05.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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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월요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열린 클래식 콘서트 [라이징 스타 – 5월 가정의 달 객석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라이징 스타’는 한글로 직역하면 '떠오르는 별'이 됩니다. 그 의미 그대로 이번 공연에서는 국내외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차세대 클래식 스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월간객석이라는 공연예술지의 주최로 열린 공연에는 한국 국적의 음악가들뿐만이 아니라 영국의 지휘자 레이너 허쉬도 함께 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 가려면 남부터미널 4-1 출구로 올라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됩니다. 지하도 안에서 꽤 많이 걸어야 해서 여유 있게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 자리는 1층 A구역 8열로 무대 오른쪽에 위치한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클래식 공연을 보는 건 처음이라 한껏 들떴었는데요, 공연 내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과 지휘자의 몸짓을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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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1부는 실력과 외모까지 겸비한 40대 이하의 한국의 차세대 음악가들을 소개하는 순서였습니다. 지휘자 류성규의 지도 아래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해주었고 총 3명의 예술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은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의 서곡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오페레타란 ‘작은 오페라’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하는 오페라보다 쉽고 가벼운 작품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성행한 장르라고 합니다. [박쥐]의 줄거리는 지조 없는 남편과 그를 골탕 먹이는 아내의 이야기로 상류사회의 애정 없는 결혼과 졸부근성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서곡을 듣는 내내 지휘자의 몸짓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류성규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지휘봉을 휘둘렀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매 순간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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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처음으로 소개된 예술가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입니다. 그는 ‘폭발력 있는 연주와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2005년에 서울예고에 입학한 후 이듬해 2006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하기까지 한 영재라고 합니다. 나이를 계산해보니 저보다 5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더군요. 훈훈한 외모까지 겸비한 그가 어떤 감성의 음악을 연주할지 공연 전 큰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가 연주한 곡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장조 KV216 1악장이었습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곡으로 경쾌함과 관악기의 사용이 돋보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바이올린의 선율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가볍게 리듬을 타며 연주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음악을 즐긴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객들은 모두 연주가 끝난 후 큰 박수로 그에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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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첼리스트 이정란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1악장을 감상했습니다.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에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있습니다. 하이든은 30여년간 에스테르하치 가문에서 일하며 총 6곡의 첼로 협주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남아있는 것은 단 2곡 뿐. 심지어 이번 공연에서 연주된 2번 협주곡은 19세기 중반에 원본이 분실되어 하이든의 작품인지 오랫동안 의심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제자가 작곡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1951년 친필 악보가 발견되면서 그의 작품으로 확인되었고, 이는 현재 빈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2번은 박력 넘치는 에너지를 지닌 곡입니다. 이정란의 묵직하고 우아한 첼로 선율에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이올린 선율이 더 좋았습니다. 서서 연주하는 바이올린 솔로와는 다르게 첼리스트가 앉아서 연주하다 보니 집중도 잘 안됐던 것 같아요. 약간은 아쉬웠던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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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는 연주자가 아닌 성악가가 등장했습니다. 테너 김세일은 국내보다 해외 무대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예술가로 오페라부터 예술가곡, 그리고 바로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장르 그리고 언어를 초월하는 성악가입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 이었습니다. 이 곡은 사랑하는 여인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멀리서 본 남자가 벅찬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곡을 다른 성악가가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이라는 수식어처럼 이 날 들었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지극히 아름다웠습니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풍부한 미성에 푹 빠져서 해어날 수 없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김세일은 바로 곡에 몰입하며 사랑에 빠진 남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오페라 전체를 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른 관객들도 열렬히 박수로 호응했고 그는 레하르 오페라 [미소의 나라] 중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이라는 앙코르 곡으로 보답했습니다. [미소의 나라]는 20세기 초 빈을 배경으로 중국의 왕자가 귀족의 딸과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는 내용의 오페라입니다. 왕자가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의 부모가 중국의 일부다처제를 따라야한다고 하지만 그는 오로지 한 여인에게만 사랑을 쏟고 싶다며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을 부릅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지만 서정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김세일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더해져 가슴 깊이 감동이 전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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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간의 인터미션 후 지휘자 레이먼 허쉬와 함께하는 2부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레이면 허쉬는 영국 국적의 지휘자로 클래식 음악과 코미디를 결합한 유머 심포니의 선두두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세계 최대 공연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13회 이상 공연을 하고 BBC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 유머 심포니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지휘자 금난새의 해설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가본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류의 공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레이먼 허쉬는 저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wow!

통상 우리는 지휘자라고 하면 백발의 신사가 검은 턱시도를 차려입고 도도하게 걸어와 반듯하게 인사를 한 후 관객에게서 등을 지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레이먼 허쉬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지휘자와는 많이 다릅니다. 첫 등장부터 그는 요란하게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등장했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팔을 휘적이며 관객의 박수를 온 몸으로 유도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지휘자의 위엄있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너무 황당스러워서 뭐지 저런 ‘관심 종자’는...? 이라는 불쾌감이 처음 들었습니다. 레이너는 어리숙한 한국말로 ‘안뇽!’과 ‘빡수!’를 외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말을 잘 못하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며 영국 여왕과 비틀즈 멤버들이 ‘안녕~!’이라고 말하는 슬라이드를 보여줬습니다. 이때까진 앞으로 어떤 공연이 이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레이너 허쉬와 군포 오케스트라가 선보였던 무대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시작은 보통의 오케스트라 연주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식상하다고 생각할 무렵 갑자기 그가 지휘를 멈췄고 연주도 멈췄습니다. 단원들은 마치 마리오네트마냥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였고 레이너는 지휘를 할 듯 말 듯 단원들과 밀당을 했습니다. 끝에 가서도 곡을 마무리 지을랑 말랑 단원들이 연주를 멈추지 못하도록 괴롭히더군요. ㅋㅋㅋㅋ 처음보는 광경에 관객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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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미국의 작곡가 리로이 앤더슨의 ‘타자기’라는 곡이 연주되었습니다. 이 곡은 주요 악기를 타자기로 사용한 곡으로 미국 재즈적인 요소가 겸비된 곡입니다. 드럼을 연주하던 단원이 나와서 타자를 치는데,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호흡이 너무 잘 맞아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소음으로 여기는 타자기 소리가 타악기 소리로 재해석되다니, 20세기 초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오케스트라를 연상되었습니다. 레이너는 이 밖에도 자신이 직접 작곡하거나 편곡한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윈도우 XP의 소리를 모아 작곡한 ‘윈도우 왈츠’가 기억에 남습니다. 여기서는 컴퓨터를 켜고 끌 때 나는 소리와 에러창이 뜨는 소리같이 일상에서 쉽게 접했던 기계음들이 모여 아름다운 왈츠로 재탄생했습니다. 또 관객들이 내는 소리로 만든 음악이 생각이 납니다. 콘서트 장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할 때면 중간 중간 관객들이 내는 소음이 있습니다. 기침 소리, 가래 소리,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보통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죠. 레이너는 이러한 불편한 소리들을 (이밖에도 방구 소리, 쉿~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악기라고 상정한 뒤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선율은 아니었지만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레이너는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는 무작위로 관객 3명을 선정해 지휘 경쟁을 하도록 했습니다. 다들 프로 지휘자가 아닌 일반인들이기에 엉뚱한 손동작을 취하고 어쩔 줄을 몰라 두리번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 오른 순간 오케스트라는 그들의 지휘에 따라 움직였고 그들의 용기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모인 수 백명의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또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다양한 장르로 편곡해서 선보였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들이 어떤 장르를 들을 수 있는지 고르도록 했습니다. 그는 인터넷 웹사이트 링크 주소를 보여주며 지금 핸드폰을 꺼내서 투표할 것을 유도했습니다. 공연 중간에 콘서트홀에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주섬주섬 꺼놨던 핸드폰을 다시 켰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재빠르게 투표를 했고 그는 뮤지컬, 락, 영화, 컨츄리 등 생각지도 못했던 장르로 베토벤을 재해석했습니다. 특히 락과 영화가 인상 깊었는데, 듣는 내내 오리지날 버전이 교향곡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화 장르의 베토벤은 마치 타이타닉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레이너는 지휘대에 올라가 케이트 윈슬렛 마냥 그 유명한 바람을 쐬는 포즈를 취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2부 공연은 우례와 같은 박수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연신 브라보를 외쳤고,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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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공연예술지 월간 객석의 주체로 열린 [라이징 스타 - 5월 가정의 달 객석 음악회]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1부에서는 서정적인 현악기의 연주와 전율적인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반 클래식 콘서트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레이너 허쉬와 함께한 2부는 보편적인 클래식에 대한 사고방식을 완전히 깨는 공연이었습니다. 관객들은 자리에 앉아 음악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태도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지휘자가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가 아닌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행동하기에 관객들도 함께 긴장을 풀고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레이너가 단순히 코미디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을 여러 장르로 편곡하고 타자기나 컴퓨터 등 현대 문명과 클래식을 결합시켰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평생 클래식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갖고 살았겠죠. 클래식이 지루하고 보수적인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한 바탕 즐기고 나올 수 있는 콘서트였습니다. 앞으로 레이너 허쉬의 내한 공연이 또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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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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