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나무숲에서 들려오는 소리 [문화전반]

글 입력 2015.04.24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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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제 48대 경문왕은 왕이 된 후 갑자기 귀가 길어져 나귀처럼 되었다고 한다. 임금이 이 사실을 숨겨 아무도 알지 못했으나, 왕을 위해 모자의 일종인 복두를 만들던 복두장이만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처벌이 무서워 평생 그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다가,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도림사라는 절의 대나무숲 속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다. 그 후 바람이 불 때면 대밭으로부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당신도 복두장이처럼 가슴 속에 꽁꽁 담아놓은, 그러나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그런 비밀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을 위한 대나무숲을 추천해줄 수 있다. 어디에 있느냐고?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페이스북(facebook) 안에 있다. 요즘,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대나무숲’을 소개한다.


 페이스북 페이지인 ‘대나무숲’은 한마디로 익명 제보 페이지이다. 사람들이 제보 URL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보내면, 페이지의 관리자들이 제보를 페이지에 업로드한다. 제보는 익명으로 처리되어 페이지 구독자들은 물론 관리자들조차 제보자를 알 수 없으며, 구독자들은 ‘좋아요’와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다. 제보의 내용은 연애, 학교생활부터 시사이슈, 하소연과 유머 등 일일이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업로드하지 않는 자체 필터링 규약도 있다. 보통 ‘연세대학교 대나무숲’과 같이 대학의 이름을 걸고 있고, 각 학교의 재학생들이 관리자로 있으며, 주 제보·구독자들 역시 재학생들이지만 페이지에 따라 타대학생, 일반인 등 넓은 계층을 아우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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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에 존재하는 대나무숲. 이외에도 수십개의 대나무숲이 존재한다.

 2012년 출판업계의 한 직원이 회사 비리 폭로를 위해 만든 트위터 계정 ‘대나무숲’이 기원이라고 전해지지만, 페이스북에 나타난 최초의 대나무숲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이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의 개설자가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비슷한 시스템을 발견해 2013년 겨울,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각 대학으로 퍼져나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 페이지의 인기와 영향력을 나타내는 ‘좋아요’ 수는 수백, 수천으로 다양한데 특히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은 거의 2만에 이르는 가장 많은 ‘좋아요’를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대나무숲은 대학생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나무숲은 할 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짜 ‘대나무숲’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삼포세대라고도 불리며 아픈 청춘을 애써 견뎌내고 있는 청년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사연에 공감하고, 위로하고, 조언하며 내일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다. 점점 더 개인화되고 삭막해지는 세상 속에서 대나무숲은 그들의 친구이자 동지가 되어준다. 또한 대나무숲은 학생들을 위한 토론의 장이 되어준다. 학생들은 부끄럽거나 기회가 없어 말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의견을 제보로, 댓글로 공유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고민한다. 대나무숲을 통해 이뤄지는 이러한 순기능은 학생사회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도 충분히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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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를 위로하며 힘을 얻는 청년들. 대나무숲은 기댈 곳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익명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은 동시에 책임의 소재가 없어진다는 그림자가 된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나 비방글, 지나치게 공격적인 글 등이 올라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대나무숲을 뜨겁게 달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체적인 규약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무결한 글을 고르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게다가 익명의 제보이고, 그 제보자와 직접 맞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숲이라는 매개가 끼어있기 때문에, 피드백 역시 다소 공격적이거나 진지하지 못한 경우가 꽤 있다. 누군지도 모르고, 어차피 만날 사람도 아니니까. 그렇게 올라간 피드백은 제보자에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의견을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대나무 숲에 한 번 외쳐보는 건 어떨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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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 네이버 지식백과

[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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