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특집] 백신애의 새빨간 가난함, 「적빈」을 읽고

글 입력 2015.04.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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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빨간 거짓말도 아닌, 불그스름한 가난함이란 도대체 어떤 가난함인걸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등장인물간의 관계가 한 번 읽었을 때는 쏙 이해가 되질 않아, 두 번을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과 두 번째 읽었을 때의 감정은 꽤 다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작품 속에 보여지는 모습처럼 찢어지게 가난할 수 밖에 없었던 1930년대 시대적 상황에 집중하여 작품을 읽었다면, 그 다음에는 ‘매촌댁 늙은이’ 의 고달픈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무렴 그 시대는 모두 가난하고, 함께 배앓이 하던 시대라고 한들 ‘사람은 똥힘으로 사는데…’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가난함이란 겪어보진 못했어도 참으로 비참한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극도의 가난함 속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 콩 한쪽아닌 반쪽을 나눠먹더라도 우선순위가 늙은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정해져있었다는 사실이다. 작은며느리가 벙어리보다 먼저 매촌댁의 며느리가 된 까닭도 있겠지만은, 무엇보다도 늙은이와 함께 작은 꿈을 품었었다는 것에 나는 의미를 두었다. 날만 새면 남의 집으로 돌아나디고 일해주고 밥 얻어먹고, 고용살이와 같은 허드렛일을 마다않으며 마음 속 한켠에 자신의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늙은이의 자그마한 꿈에 함께 해준 사람이 작은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삭인 몸에 배가 고파서 끙끙대는 벙어리보다도 작은 며느리에게 눈길이 간 것이 아니였을까? 역시 사람이란, 어려운 시절을 함께 있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같은 길을 바라보며 꿈을 꾸는 사람에 대한 동질감 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작품을 읽으며 화도 나고 속이 터질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는데 이렇게 가엾은 노모가 동네방네 돌아다녀가며 쌀 한 되, 보리쌀 두 되 얻어올 동안 어떻게 몸뚱어리 멀쩡한 두 아들은 술이나 마시며 한심한 짓들만 일삼을 수 있냐는 것이다. 작품은 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던데, 그렇다면 1930년대에 살던 남성들은 꽤나 무능력하고 삶에 대한 의지와 생활력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가정했을 때, 현대의 일반남성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이라는,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는 변치 않는 이야기이다.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봤을 때, 늘 우리집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이며 메인요리들은 풍족했다. IMF가 터져 나라 전체가 어두컴컴했던 시절에도 변치 않았던 유일한 것은 내 입으로 남김 없이 들어가던 푸짐하고 꿀맛 같던 엄마표 집밥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무런 의식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성장기가 지나 돌아보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당신은 천원 짜리 한 장에도 벌벌 떨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고기 반찬은 포기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은 비교할 수 없이 지극히 다르더라도 늙은이가 돼지나 둘째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지금의 우리엄마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어머니’는 약 90년전이나 지금이나 늘 자식과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로 비춰지는 것일까. 물론 요즘시대의 텔레비전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어머니’는 가족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삶을 추구한다든지, 제 2의 연애를 시작하거나 하는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들은 그러한 ‘새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접하며 겉으론 이해하는 척 엄마의 개인의 삶을 이해하는 척, 존중하는 척 하면서도 마음 속 내면 깊은 곳에서는 어떤 낯설음이 꿈틀거리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극한 가난 속에서 어머니가 금쪽같은 새끼들을 모두 팽겨치고 집을 나간 후, 아버지가 부성애로 자식들을 먹여 살려내는 이야기가 흔치 않지는 않은가. 하지만 다음에는 누군가가 이러한 고달픈 틀을 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머니의 악착같은 희생으로 가족 모두 입에 겨우 풀칠하는 이야기가 아닌, 아버지가 되었든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가족 모두가 협조하여 가난이라는 그 무거운 짐을 하나 둘씩 걷어내는 이야기로 말이다.

 

[유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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