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래여, 내 기억의 먼지를 털어주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5.04.11 04: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665040_1_f.jpg





장기하와 얼굴들- 그 때 그 노래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했더니

벌써 몇 달째 구석자리만을 지키고 있던 음반을

괜히 한 번 들어보고 싶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예쁜 물감으로 서너 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였구나

그렇다고 내가 눈물 한 방울 글썽이는 것도 아니지마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cover.jpg

김동률- 오래된 노래 (5집 Monologue)

우연히 찾아낸 낡은 테입 속의 노랠 들었어

서투른 피아노 풋풋한 목소리

수많은 추억에 웃음 짓던


언젠가 너에게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 노래

촌스런 반주에 가사도 없지만

넌 아이처럼 기뻐했었지


진심이 담겨서 나의 맘이 다 전해진다며

가끔 흥얼거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

 

오래된 테입 속에 그때의 내가

참 부러워서 그리워서

울다가 웃다가 그저 하염없이

이 노랠 듣고만 있게 돼

바보처럼

 

널 떠나보내고 거짓말처럼 시간이 흘러서

너에게 그랬듯 사람들 앞에서

나 노랠 들려주게 되었지

 

참 사랑했다고 아팠다고 그리워한다고

우리 지난 추억에 기대어 노래 할 때마다

 

니 맘이 어땠을까

라디오에서 길거리에서 들었을 때

부풀려진 맘과 꾸며진 말들로

행여 널 두 번 울렸을까

참 미안해

 

이렇게라도 다시 너에게 닿을까

모자란 마음에

모질게 뱉어냈던 말들에

그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







  종종, 내가 성인이라는 사실을 믿기 싫다. 타지에 떨어져 사는 게 무섭고, 엄마 품만 알던 나. 그러던 내가 어느새 집에 가기를 귀찮아한다. 이럴 때면 ‘더 자랐구나.’라고 느껴 서럽다. 언제나 그렇다.

  

  아무리 서글퍼 해도, 야속한 시간은 어리고 싶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은 떠나고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잃는다. 그리고 새로운 현재와 마주한다. 가버린 현재는 과거이다. 그 중 특별한 과거만이 ‘기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음의 방에 입주한다. 일기를 쓰거나 사진을 찍지 않는 이상, 다시 방문할 것을 기약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발걸음을 하는 기억의 방은 적다.

  

  그렇게 많은 ‘기억’은 먼지를 먹어간다.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언제 나갈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누구든지 마음에 먼지 쌓인 방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찾아와 방의 먼지를 털어주고 ‘기억’의 손을 이끌어 주는 이방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음악’. 어떤 방에 있는 ‘기억’인지는 상관없다. 유쾌한 ‘기억’이든 보기 싫은 ‘기억’이든, 그가 방문하면 누구든 다시 나오게 되어 있다.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에 우리는 배경음악을 깔아 녹화했기 때문이다. 같이 있던 사람, 먹었던 음식, 그 날의 색깔, 공기, 온도, 기분, 냄새까지. 영상이 재생되고, 기억은 잠깐 현재의 옷을 빌려 입는다. 

  

  나는, 전람회 앨범을 들으면 자율학습을 마치고 늦은 밤을 걸어 집에 가던 나를, 10cm 1집을 들으면 고등학생 때 짝사랑했던 오빠를, 페퍼톤스를 들으면 무작정 혼자 떠났던 지하철 여행을 기억한다. 이렇게 인생은 하나의 플레이 리스트가 되고, 현재가 되고 싶어 하는 과거에게 기회를 준다. 과거의 기억을 느끼는 것이 나는 좋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모든 음악이 좋은 기억만을 상기시키는 건 아니다. 내 친구는 전 남자친구와 연애할 때 들었던 노래를 이제는 듣지 못한다. 겨우 4분짜리 노래 하나일 뿐인데, 듣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장기하의 얼굴들의 그 때 그 노래.

떠올라버린 밤들이 낯설어 들어버린 음악을 원망하는 그.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

더 주지 못한 사랑에 후회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그.

 

뜨겁게 사랑했던 때의 노래를 지금은 듣지 못하는 내 친구.

 

그들은 모두

이래서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행복했고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과거의 빛나는 자신에 눈이 부셨기 때문에.

과거의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건, 노래 하나만 들으면 끝나는 쉬운 일이지만

지금의 나와 다름을 알고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내가 가끔 그리울 까봐 이어폰을 끼고 배경음악을 재생하는 걸지도.

 

[조하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