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멍때리는 책들에 관하여 [문학]

글 입력 2015.04.07 21: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산지 4년차가 되어가는 나는 이제 자취생활이라면 도가 텄다. 아침이면 구수한 된장국 대신에 시리얼과 토스트를 먹는 반강제적인 우아한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잠이 안 오는 밤엔 불면증을 빌미로 맥주 한 잔을 마실 정도의 넉살도 생겼다. 이런 내게도 외로움의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최근엔 SNS가 문제였다. 친한 친구가 SNS에 다른 사람과 먹은 음식들을 자랑한 것을 보고선, 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라는 야속한 마음을 품었지만 왠지 이런 내가 좀스러워지는 기분이 들어 최근에 잘 나간다는 예능을 틀어 봤다. 그러자 점차 모든 순간과 멀어지면서 오히려 마음 한 쪽이 가뿐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이 현상을‘멍 때리기의 미학’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미 많은 책들이 이에 관하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내게서 생기는 빈 공간을 수긍하고 바라볼 때야 비로소 삶의 여유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 빈 공간을 위해서 임의적으로라도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멍 때리기를 위한 4권의 책을 꼽아 보았다.
 
 「멍 때려야 하는 이유」
 
게으름.jpg▲ 버트런트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여전히 바쁘게 지내시죠?’ 한국 사회에서 인사말로 통용되는 이 말은 ‘바쁨 = 좋은 것’이라는 전제를 숨기고 있다. 우리는 바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된 인물이며 무용한 존재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승인한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이 없더라도 바쁘기 위해서 일들을 벌이곤 한다. 바쁨은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상태에 불과한데, 오히려 그것 자체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90년대의 러셀은 이미 이런 현상이 도래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그토록 바삐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진정한 소비에 대한 고찰이 없는 생산은 악에 불과하다고 그는 설명한다. 좋은 소비가 최상의 생산을 위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라고 간주하기 쉬운 말들이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의 수려한 문장들 속에서 우리의 내일을 움트게 할 비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멍 때리기 좋은 책들」
 
보이지.jpg▲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여러 챕터로 구성된 이 소설은 잠들기 전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더라도 도시에 관한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기억’, ‘이름’, ‘섬세한’과 같은 수사들에 얽힌 도시의 모습들은 선해 보이거나 악해 보인다. 칼비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소설 속에 투영시킴으로서 독자 스스로가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선과 악을 모두 포용한 채 그것 위에 환상을 덧씌우는 일이다. 도시에 환상을 덧입힘으로서 그 무게를 가볍게 만들거나 본질을 똑바로 응시하게 하는 그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삶을 대하는 유용한 방법을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시와 같이 짧은 길이의 이야기들이니 잠들기 전 조금씩 읽다보면 복잡한 세상사에서 무엇을 빼야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생활.jpg▲ 정혜윤, 사생활의 천재들


 작가가 8명의 사람들과 나눈 대화와 그에 덧붙이는 말로 구성된 이 책을 읽다보면 한 방에서 여러 사람들과 둘러 앉아 대화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각자의 이야기에 웃고 울다보면 어느 새 가슴 한쪽에 단란한 희망이 싹트는데, 그 이유를 작가의 표현을 빌려 말해보자면 우리 모두가 ‘사생활의 천재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는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를 결정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작되는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내 삶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아주 소박한 사랑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작가가 이야기를 나눈 8명의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기에 타인 역시 사랑할 수 있는 천재들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이야기에 멍하니 빠지다 보면 우리 안에서도 그러한 힘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게 된다.
 
꼐속ㄱ.jpg▲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쉴새없이 대화를 나눈다. 소라, 나나, 나기는 서로에게로 혹은 그들 각자의 내면에게로 말을 건다. 그들의 대화는 특별한 사건을 형성하지 않는다. 사소한 대화들로도 이 소설이 충분히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의 내면이 어디론가 충실하게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미덕을 떠올리게 된다. 내 안의 빈 공간에 타인을 담고 그들의 삶을 긍정하다보면 도리어 내 삶 역시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아름다움 말이다. 소라, 나나, 나기만이 ‘족장이고 부족민’인 세계는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 삶의 사건들을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삶과 확보된 거리를 통해 멍 때리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현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