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간첩, 할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3.29 23:2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75015_201408251745064YC_99_20140825183505.jpg

‘귀신, 간첩, 할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말이다. 하지만 왠지 모를 슬픔도 느껴진다. 그곳에 있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비로소 그곳에 있게 되었다는 표현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아트서울> 2014 : 귀신 간첩 할머니’ 전시를 보러 서울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해괴했고, 슬펐고, 무서웠다. 전시 이름과, 내가 좋아하는 매체들을 이용한 예술이라는 점 정도만 알고 찾아간 전시였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전시장 분위기 자체가 무겁게 느껴졌는데, 왜 하필 귀신, 간첩, 할머니를 한 데 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 간첩, 할머니의 공통점을 한참 생각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모두 ‘사회에서 외면 받는 것들’ 이라는 것이었다. 후에 전시기획의도를 읽어보니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잊혀지는 것들’이라는, 비슷하지만 다른 해답을 받았지만 말이다.  


왜 ‘귀신 간첩 할머니’ 인가?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아시아’를 화두로 삼고 있다. 아시아는 강렬한 식민과 냉전의 경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급변을 공유해 왔지만, 이를 본격적인 전시의 주제로 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이번 전시는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대 아시아를 차분히 돌아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귀신은 아시아의 잊혀진 역사와 전통을, 간첩은 냉전의 기억을, 할머니는 ‘여성과 시간’을 지시하는 상징적인 단어들이다. 그러나 출품작은 이러한 주제를 훌쩍 넘어서기도 하고 비껴가기도 하는 풍부한 가능성의 상태로 관객 앞에 놓여 있다. ‘귀신 간첩 할머니’는 아시아로 여행하는 세 개의 산책길이기도 하고, 전시를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렌즈와도 같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그렇게 잊혀지고 잊혀진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마치 기억해달라는 듯이, 봐달라는 듯이. 



01.jpg▲ 1 ) [만만세(萬萬歲, Long Long Live)] 야오 루이중. 2013년, 비디오, 7분 20초


  처음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계속해서 반복되는 어떤 소리가 있었다. 흡사 야채장수 트럭에서 나오는 소리 같이, 끝없이 반복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소리.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보니 야오 루이중의 <만만세>라는 영상작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였다. 영상전시실에 들어가질 못하고 망설였다. 전시장에 발을 딛자마자 온 전시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작품이 너무 섬뜩했기 때문이다. <만만세>의 음성을 들으면서 너무도 갑작스럽게 현실과 단절되어 전시장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정말 이상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느꼈다. 그런 만큼 뇌리에 깊이 박힌 작품이었다.
  <만만세>는 대만이 장개석 독재체제 아래 있을 때, 타이위안 감옥에서 있었던 봉기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폐허가 된 공간에 한 제복을 입은 남자가 계속해서 손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만세’를 외친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온통 바스라진 그 공간에서 무언가를 호소하듯, 찢어질 듯 만세를 외친다. 억울하게 사형당해 한맺힌 귀신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 독재시대를 그리워 하는 사람의 충성스러운 외침일까? 생각해볼만한 작품이었다.


  처음 관람을 시작할 때는 딱히 순서에 연연하지 않는 전시 동선 때문에 기획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1층 관람을 끝내고, 3층까지 모두 돌아보고 나왔을 때 비로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맥락임을 파악하게 된다. 
아시아의 과거 속 인물들에 대한 기억전반에서 시작하여, 간첩이야기, 그리고 무속과 역사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의 모습까지 줄줄이 연결되어있다는 점을 말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내겐 굉장히 어렵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작품 작품마다 모든 의미를 해석하긴 어려웠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앤디워홀의 유명한 말이 생각났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라는 말. 내가 현대 미술에 무지해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작품이야?’하는 의문점이 생기는 것도 많았다. 설명을 보아도, 오디오가이드를 들어도 잘 와 닿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 일행과 의견을 나누며 작품 앞에서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다.


 
포맷변환_noname012.jpg▲ 2) [‘모든 미묘한 몸짓’ 中] 바심 막디 2012–ongoing

  생각을 많이 했던 작품 중 하나가 바심 막디의 <모든 미묘한 것들> 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스냅샷과 한 줄의 글귀가 함께 있는 작품인데, 사진과 글귀가 언뜻 보기에는 연관성이 없어 보여 그 의미를 생각하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실제로 이 시리즈는 식별할 수 있는 서사나 구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작가가 밝혀주는 작은 횃불을 가지고, 관객들이 이러한 애매모호함을 자신들의 마술적인 이야기로 전환시키게 하는 것을 의도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인상 깊게 본 작품은 농구골대가 쓰러져 있는 이미지에, ‘모두 가장 사소한 것에서 피할 도리 없는 끝을 보았다’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내 방식대로 이렇게 해석했다. 농구골대는 무척 사소한 것이다. 생활과 놀이의 일부이고,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것조차 이제는 쓰러져 버렸다. ‘아니, 농구골대마저..!’ 이제 더 이상 사진 속 세계는 일말의 희망도 잃어버린 것이다. 다른 사진들은 정말 알기 어려운 것도 많았지만, 하나하나 내 의미로 바꿔보는 사고과정자체가 재미있었다. 

포맷변환_noname013.jpg▲ 4) [‘바 바 바3하츠(할머니 폭발)’ 연작 중에서] 나이토 마사토시 1968 printed in 1988


  ‘할머니’를 그려낸 작품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나이토 마사토시의 <바 바 바쿠하츠(할머니 폭발)>라는 작품이었다. 눈이 먼 무당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들여, 신성한 장소에 모인 할머니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늙은 여성들은 낮 동안에는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울고, 밤이 되면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죽은 이들이 살아있는 여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다시 안겨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흑백이지만 강렬한 빛을 이용해 찍은 사진들인데, 할머니들이 흥겹게 노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민속학적인 사진이어서인지 코를 관통하는 장신구라든지, 끔찍해 보이는 풍습에 관한 사진들도 있었다. 전통적인 풍습과, 삶의 연륜을 쌓은 자들이 애환을 훌훌 털어버리는 모습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귀신, 간첩, 할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났고, 그들이 속삭이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그 세 가지 요소들을 접하면서 때론 혼미하기도, 무섭기도 했지만 다른 세계에 잠시 다녀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을 나오자마자 일행과 ‘몽롱하다!’라는 느낌을 공유한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아직은 현대미술이 불편하고 어렵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앞으로 조금씩 알아가면서 작품을 한 층 더 깊게 이해하고,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싶다. 이상하지만 신선한 전시였다. 귀신, 간첩, 할머니!  

  ‘현대미술은 어렵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나 역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미술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이런 의미구나!’ 하고 깨닫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귀신, 간첩, 할머니> 전시를 다녀와 보니, 내 생각에 현대미술감상의 묘미는 작가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생각해보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직관적으로 느꼈던 섬뜩함, 슬픔 등의 감정처럼, 작품이 내뿜는 정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탁유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