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로사회를 대하는 문학의 자세 [문학]

글 입력 2015.03.2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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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58823.jpg피로사회, 한병철

07363456.jpg혀끝의 남자, 백민석

 며칠 전 모 연예인들끼리의 다툼이 큰 화제가 되었다. 대중은 그들 간의 정확한 정황을 알 수 없었는데, 그들의 다툼이 찍힌 동영상이 방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출되었고, 연일 인터넷에는 그들에 대한 새로운 추문이 업데이트 되고 있다. 불과 이십 년 전이었다면 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로운 정보 특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치정과 관련된 정보는 연일 새롭게 등장한다. 아마 이번 다툼 사건 역시 몇 주 후엔 다른 이들의 열애설로 갈아치워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세상살이에 더 많은 관심을 지니게 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빠른 정보 교체의 구조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기 위해 현대를 ‘피로사회이자 투명사회’라 칭한다. 2014년에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 ‘투명 사회’에 따르면 현대는 모든 것이 즉각 공개되는/ 공개되어야만 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정보의 빠른 교체이다. 가령 내 앞에 앉은 여성의 치마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그녀에 대한 나의 호기심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물론 혹자는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녀에 대한 나의 판단은 훨씬 더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한 사회의 정보는 이와 유사한 양상을 지니기에 사람들은 정보에 대하여 빠른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가급적 그들의 판단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뤄진다. 한병철은 사회 구조적으로 긍정 판단에 대한 강제가 전제되어있다고 말한다. ‘좋아요’만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다른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지체’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는 얼마나 효율적인 것이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순간에 우리의 세계는 단순한 수적 논리로 편성되어버린다. 이런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신(눈에 보이지 않는 것) 없는 삶이 어디 가당키나 하냐고.” 우리는 질문할 수 있다. 그리고 문학이 이런 물음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작가 백민석은 십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혀끝의 남자”는 그가 새로 낸 소설집의 이름이다. 이 표제작은 인도를 유람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인데, 그는 인도 여행의 끝에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잘못들을 어떻게 바로잡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잘못들을 저지르기 위해 항상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 고백한다. 그가 여행 내내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자취를 살펴보면 하시시를 피우거나, 혹은 여자를 강간하려 들거나, 혹은 신성을 모독하는 그의 ‘악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그가 발작적으로 겪는 ‘기억의 질병’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행한 것이다. 그는 인도 여행에서 만난 거지와, 노숙자, 구걸하는 소년들의 이미지를 끝내 체화시키지 못한다. 

 피로사회는 아마 그러한 정보에 대해서 빠른 판단을 내리기를 종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발작적으로나마 그러한 사회로부터 탈주하려고 한다. 사회의 암묵적 규칙을 어기고 있기에 그는 스스로를 잘못이 많은 자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작품의 말미에서 그는 발작적 증상을 지닌 병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적 위상을 가지게 된다. 바로 자신의 혀끝에 신을 세움으로서 스스로가 ‘종교의 발상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신을 죽였으므로 신의 부활 역시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는 이 전언은 아마 작가 백민석이 피로사회에 대해서 문학이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 것인 듯하다.

[문현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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