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일권의 작품은 어떠세요? [문화전반]

글 입력 2015.03.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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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는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궁극으로 발전했다. 지식은 손가락의 의지만 있으면 무한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됐다. 다량의 정보가 쏟아졌고 그만큼 선택취사 가능한 개인적 취향이 다양화됐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다. 현대인은 과잉된 선택을 요구받고 있으며 거짓이 섞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의 분별력을 키우는 중이다. 
  그렇다면 변화에 제일 민감한 청소년들은 무분별한 정보의 편리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들은 21세기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삼봉이발소.JPG 삼단합체김창남.JPG
3단합체 김창남-하일권/2008
삼봉이발소-하일권/2012


   
  하일권의 대표작 「삼봉이발소」, 「삼단합체 김창남」은 학교를 배경으로 왕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삼단합체 김창남」는 왕따의 심각성, 인간본연의 감정소실, 폭력의 방관자에 비중이 실려 있으며  「삼봉이발소」는 외모지상주의, 개개인의 정체성 불확립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현재 청소년들은 SNS를 이용해 왕따놀이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자신의 위력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힘이 센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 학교 폭력을 하는 ‘맥’이 21세기에 맞춰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법은 교묘해지고 가학성이 높아졌다. 또한 폭력성이 높은 해외의 동영상들을 제재하는 이가 없어 마음대로 시청할 수 있다. 그들의 흡수 능력은 뛰어났다. 
  여전히 OECD 국가별 아동,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은 한국이 23위로 낮은 순위로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재의 상황은 하일권 작품에 깊숙이 나타나있다. 언어와 행동 폭력 그리고 일명 ‘셔틀’의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작가는 집요하게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왕따의 순환성과 폭력의 논리에 수긍하는 방관자. 이들은 자신이 신체적 접촉이나 언어적 폭력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자신은 괴롭힘 당한 아이를 괴롭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인간의 편리성이 발달할수록 발전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보이지 않게 압박, 가상의 돈을 빼앗기 등 편리함에 맞춰 변화되어 왔다. 
  작자는 두 작품을 통해 현실의 문제점을 폭로하며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웠다. 그러나 정보의 힘은 너무나 강하다. 하일권 작품에는 있지만 현재의 청소년들에게는 없는, 저마다의 청소년 시기에 대한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다. 아픈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불사신처럼 계속 재생산되고 재분배될 것이다. 청소년들은 ‘잊혀질 권리’를 사용할 수 있을까. 
  작자가 작품 속에서 내비췄던 ‘개선 가능성’이 정보의 홍수에서 살아남길 바란다. 


 
현 시대의 문제를 웹툰 형식으로 쉽게 풀어 쓰기란 어렵다.
하일권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재탄생되고 반복적인 읽기의 학습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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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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