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지오웰의 1984와 백남준의 1984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3.1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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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와 백남준의 1984 



 




 조지 오웰은 그의 저작 '1984'에서 매스미디어가 전 인류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암울한 1984년의 모습을 그렸다. '1984'에서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하는 완벽한 디스토피아적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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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과 1984>

 

 

  하지만, 백남준이 그리는 1984년의 세계는 조지 오웰이 예언한 1984년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원거리 통신을 이용하여 매스미디어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비디오 아트 속 예술가들은 그러한 암울한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유쾌하고 때로는 엉뚱하게 자신들의 개성을 마음껏 펼친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11(미국시간)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생방송된 백남준의 텔레비전 쇼로,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했다. 쇼를 통해 시대를 풍미하던 유명한 플럭서스 예술가들과 실험 음악가들이 자신의 예술성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한 자리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퍼포먼스나 예술 활동들을 만나볼 수 있다. 로리 앤더슨의 재기 넘치는 음악에서부터 요셉 보이스의 개성 강한 퍼포.먼스까지 백남준의 프로젝트를 통해 뉴욕과 파리에서 각자 살고 있는 전혀 다른 예술가들이 한 곳에 모여 화합의 장을 이룬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안방에서 다양한 문화와 예술, 퍼포먼스를 접하게 된다. 사방에서 산발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오는 예술과 문화는 어떻게 보면 한 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여러 국가 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 상식, 예술적 특성들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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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1932년 7월 20일 (서울특별시) - 2006년 1월 29일





또한, 텔레비전 쇼가 녹화하는 기존 방송 체계와는 달리 생방송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백남준이 더군다나 바쁜 예술가들에게 꼭 생중계 퍼포먼스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리 녹화를 해놓고 나중에 송신하는 것과 생방송은 어떤 차이가 있길래 백남준이 굳이 생방송을 고집한 것일까? 생방송은 쌍방향 작업이 가능하다. 실제로, 생방송에서 뉴욕과 파리에서 두 진행자가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두 지역에서 다양한 공연들이 교차되어 진행되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서로서로 쌍방향의 피드백을 만들기도 했다. 생방송으로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접촉이 하나의 새로운 내용, 형식, 사고를 촉발시키고 반대로 새로운 내용이 또 다른 접촉 시도를 만들어내는 예술에서의 긍적적인 순환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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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파리의 스튜디오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장면

 

 

현대 예술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거장들의 만남, 그 만남으로 성사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작품의 탄생이 위성예술의 발달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물리적인 시공간의 한계로 이러한 위대한 만남이 불가능 했다면, (백남준은 위대한 천재들이 서로 만나지 않고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이를 한탄했었다.) 이제는 위성의 발달로 일생일대의 만남으로 여겨지던 만남조차도 언제 어디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일상적인 만남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생방송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만남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녹화된 퍼포먼스들이 이와 같이 교차로 TV에 등장을 했다면 퍼포먼스 간의 상관성은 아예 없어지고 의미 없는 퍼포먼스의 나열에 불과했을 것이다



  백남준은 위성의 발달이 강한 자의 자유를 더욱 증대시키는 데에만 머무르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위성은 전인류적인 차원에서 쓰여야한다는 것이다. 위성을 통해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문화나, 멀리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훤히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공감하고 자신의 문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백남준은 이러한 위성의 특성을 통해, 비주류 문화인 연약한 문화를 보호하고 여러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기록하고 영구히 보존함으로써 문화가 지닌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백남준은 이를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실현시키려고 하였으며,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접하며 새로 접한 문화를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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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스터 오웰> 위성 쇼에서 펼쳐진 퍼포먼스의 대향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백남준이 조지 오웰에게 보내는 일종의 헌정 방송 같다. ‘당신이 예언한 세계도 일리가 있지만 세상은 아직 살만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의 100여명의 예술가들을 빌려 말하는 듯하다. 조지 오웰이 제시한 감시와 통제가 인류를 지배하는 삭막하고 숨 막히는 시대에 백남준이 발견한 해결책은 바로 예술이다. 음악, 무용, 미술, 퍼포먼스 등의 예술은 보편적인 언어로써 번역이 필요하지 않다. 전 세계 사람들은 공통된 퍼포먼스를 보며 다 같이 웃고 즐길 수 있다. 위성 기술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장관이다. 우리가 어디서 그런 거장들의 만남과 그들의 협연을 접할 수 있겠는가?

 

2015년 현재,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시스템은 우리와 세계를 더욱 밀접하게 연결시키며,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까지도 파고들어와 일상을 지배한다. 인터넷 상으로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통제나 감시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백남준이 제시하는 1984년의 시대와는 다른 앞으로의 2084년의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백남준이 예언한 것처럼 21세기의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억압받는 시대일지 아니면 수많은 문화와 제도, 예술 등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다양성의 시대일지는 백남준의 뒤를 잇는 작가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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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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