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의 선택권 [문화전반]

글 입력 2015.03.1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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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Don't Know Jack

감독 베리 레빈슨 
2010


  인간은 ‘삶’과 ‘죽음’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의 중요성이 동일시되어 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될 수 있다. ‘나’와 ‘너’ 또는 ‘타인’의 삶과 죽음의 중요도가 동일화 될 수 있는 것인가.

  3인칭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에서 고찰하게 되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명확해진다. 현존하는 ‘나’는 자신의 탄생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가족과 타인에 의하여 기록되어지는 문서들의 종합을 통하여 확인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죽기 직전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나’는 현재 미약하게나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이 아닌, ‘죽음’에 관한 결정권, 특히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선택에 대한 논쟁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나’는 삶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채 세상 밖으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이것은 ‘안락사’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문구이다. 하나는, 자신의 생명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 주체적인 선택권은 존재하며, 반대로 약탈당할 수 없는 법적인 보호막에서 생성되며 살아가기에, 주체적인 선택에 의한 안락사를 찬성한다. 또 다른 하나는, 타인에게 생명을 이양할 수 있는 권리가 존재하지 않기에 삼자에 의한 안락사를 반대한다. 이처럼 극명하게 대립하는 두 가지의 견해는 현재까지 통합되지 못한 채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조금 논제를 바꿔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나는 생명을 포기할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 논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안락사’ 자체가 자신의 죽음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정확한 답변을 내리기가 힘들 것이다. 위와 같은 논제 자체가 안락사만을 가지고 논하기에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논해보자면, 생명을 타인에게 이양할 수 있는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선택권이 배제된, 자신의 주체적 선택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주체가 되어 결정하는 ‘죽음’ 즉, ‘자살’과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이들의 논리가 어긋나게 되는 현상이 초래된다. 따라서 ‘안락사’에 대한 찬성은 1인칭 시점에 기반을 둔 견해이며, 반대는 3인칭 시점에 기반을 둔 견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이 온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의 오류가 발생하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살’과 관련지어 설명 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약물이 아닌 어떠한 방법으로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당위성이 허용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에게 걸맞은 ‘자살’에 대한 당위성의 합리화가 당연시되는, 본래 찬성의 입장인 죽음의 주체적인 선택의 의미가 모호해지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죽음의 선택권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의문으로 귀결된다.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 기준이 되어 선택하게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여기서 증폭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의 예로, 베리 레빈슨의 『You Don’t Know Jack』이라는 영화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의사인 노인이 병의 고통·치료에 의한 고통스러움을 느끼는 환자에게 ‘안락사’라는 개념을 허용하면서, 죽음에 다다른 이들에게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인권단체 또는 종교단체에서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 또한 격렬하게 표현되어 진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이 생명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면, 자연스러운 죽음을 허용한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즉, 인위적인 죽음을 반대하는 견해와 일맥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또 다시 한 가지 의문이 발생되어진다. 만약, 자연스러운 죽음이 정통적인 방식이라면 죽음에 다다른 이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과연,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인 Jack은 ‘안락사’의 허용범위에 포함되는 사람은, 죽음의 문턱까지 온 사람들로써 현대의학이 생명을 연장하듯이, 조금 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해줄 수 있는 ‘기능’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피력한다. 즉, ‘안락사’ 또한 의학에 의하여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변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단순히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을 넘어 한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권에 관한 논제를 제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부분을 고찰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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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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