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설과 영화, 두 가지 화차 [문화 전반]

글 입력 2015.03.1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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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차(火車): 죄인을 태우고 지옥불을 향해 달리는 요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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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이영미 역, 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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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감독: 변영주
장르: 미스터리
출연: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

 

휴직 중인 형사 혼마에게 조카 카즈야가 찾아왔다. 자신과 약혼한 쇼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쇼코는 카즈야와의 결혼을 앞두고 카드 발급을 신청하게 되었다. 카즈야의 지인을 통해 빠른 카드 발급이 가능할 거로 생각했는데 돌아온 건 은행 계열과 신용판매회사 계열 양쪽에 블랙리스트로 올랐다는 이야기. 카즈야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쇼코는 '얼마간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선 돌연 사라져버린다.

 

쇼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쿄로 상경했다. 일반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신용카드를 만들게 되었는데 지불이 어렵게 되자 술집에 나가게 되었다. 파산 후에도 일반 회사에는 취직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술집에 나갔다. 쇼코의 개인파산을 담당한 변호사 미조구치는 이렇게 말한다.

 

"세키네 쇼코는 개인파산을 한 여자다. 게다가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니까 돈 낭비가 심했던 건 물론이고 사생활도 엉망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게 오해라는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 카드나 은행 대출 때문에 파산에 이르는 사람들 중에는 부지런하면서 겁도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도망간다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해요. 어떻게 해서든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다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야반도주를 하기 전에, 죽기 전에, 사람을 죽이기 전에, 파산 수속이 있다는 걸 기억하라" -미조구치


미야베 미유키에게는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라는 수식어가 있다. 그에 걸맞게 그녀는 화차를 통해 카드사용과 개인파산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려냈고, 이는 당시 일본의 사회문제와 연결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화차를 읽으면서 놀랐던 건 소비자 신용에 대한 그녀의 시선이었다. 예금과 대출, 실체가 없는 환상인 금융시장, 지나치게 편리한 신용카드의 발급과 사용, 무차별 과잉 여신. 그녀는 미조구치의 입을 빌려 고등학교에서는 졸업 전 화장법이 아닌 신용카드나 돈의 올바른 사용법과 기초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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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는 선영

영화엔 선영(쇼코)와 결혼은 약속한 문호(카즈야), 그리고 문호의 사촌 형인 전직 형사 종근(혼마)이 등장한다. 문호와 함께 부모님께 결혼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들린 휴게소에서 선영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는 그대로 사라진다. '있잖아, 문호 씨. 스카프 정말 좋아하실까?'라며 부모님께 드릴 선물에 대해 걱정하던 선영이었다. 비 맞지 말라고 우산 쓰고 가라고도 했다.

친구 동우에게 전화가 왔다. 선영에게 개인 파산했던 기록이 있다고 했다. 선영의 집은 비워져 있고, 동우는 문호에게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낸 개인파산 서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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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근(좌)와 문호(우)

책에서는 혼마가 쇼코를, 영화에서는 문호와 종근이 선영을 찾아 나선다.

이력서 경력사항에 적힌 그녀의 이력은 전부 가짜였다. 친하게 지낸 친구도 모른다. 일가친척 없는 고아다.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진을 확인하니 변호사는 쇼코/선영이 아니라고 한다. 

 

"죽어 줘. 제발 죽어줘, 아빠." -쿄코


그녀는 쇼코(선영)가 아니고 쿄코(경선)였다. 쿄코의 아버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지만 주택 붐에 동참했다가 빚을 갚지 못하고 야쿠자가 연관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말았다. 가혹한 독촉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도쿄 어디서 막노동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매춘 조직에 끌려갔다가 각성제에 시달렸고 이내 죽고 말았다. 쿄코는 지역 유지의 아들은 구라타를 만나 결혼했지만, 사채업자들은 쿄코의 신혼집까지 찾아와 독촉했다. 실종선고를 하면 벗어날 수 있지만 그러기까진 7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쿄코와 무라타는 도서관에 가서 신문의 사망란을 찾아보았다. 그때 무라타는 관람실에서 '죽어줘. 제발 죽어줘, 아빠.'라고 간절히 바라면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렇게 쿄코는 구라타와의 생활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끝냈다. 그래서 쿄코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꿰찰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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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의 남편 승주

가구 공장을 하던 경선의 아버지는 IMF 때 대출에서 사채를, 정말 악질적인 사채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야반도주를 하게 되었고, 경선은 성당 보육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돈 벌어서 경선을 찾아오겠단 엄마는 히로뽕에 중독된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그런 경선을 안쓰러워한 승주(무라타)는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이 둘에게 찾아오고 생활은 파탄이 난다. 매일매일 술로 보내던 승주는 어느 밤 자신을 가엾게 여긴다면 제발 우리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경선을 보게 된다. 그렇게 둘은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승주에게 경선은 없었던 일이길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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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코와 달리 경선은 터미널에서 사채업자에게 잡혀가 1년을 시달리게 된다. 가까스로 탈출한 경선은 아는 언니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 올라가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경선은 그사이 누구의 애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출산하고 병이 있는 그 아이를 잃기도 한다. 지옥 같은 1년이었다. 

그래서 경선은 자신이 화장품 업체에서 일할 때 고객명단을 훔쳐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 하나뿐인 엄마를 잃고 친구가 없는 선영에게 접근하여 친구가 되었다. 쿄코 역시 고객 명단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 경선을 노린 선영과 달리 쿄코는 우연히 쇼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쇼코의 인생을 훔치기로 했다.

 


"우리 집이야 언니. 나 나중에 여기 가서 살 거야. " -경선


주택 담보 대출 때문에 일가족이 무너진 쿄코는 모델하우스를 보러 다니는 취미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모델하우스에서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다시 새 인생을 시작해서 언젠가는 꼭 이런 집에서 행복하게 살 거라고. 


쿄코는 제1 타겟으로 다시 방향을 바꿨고, 경선은 다른 표적을 찾아 나섰다. 문호는 그런 경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경선에게 문호는 붙잡히지 말고 가라고 한다. 하지만 떠나는 경선을 쫓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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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쇼코


변영주 감독은 1990년대 일본의 소설을 2011년의 우리나라,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결국 세상 밖으로 경선을 내쫓게 되는 현실의 비극적인 냉혹함으로 표현했다.


소설에서 쇼코의 대사였던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라는 영화에서 경선의 '행복해지고 싶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로 바뀌었다. 소설을 읽을 땐 사회가, 세상이 무서웠고 그 안에서 사는 작은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영화를 볼 때는 경선이 한없이 안쓰러웠다. 왜 경선은 행복해지고 싶었고, 행복해질 줄 알기만 했을까. 어째서 행복하지 못했을까. 불행은 타인의 인생을 훔칠 명분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개인을 마냥 탓할 수도 없다.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라는 질문엔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지만 왜 불행해야 하죠?라는 질문엔 대답하기가 어렵다. 선택하지 않은 불행만 찾아온다면, 잘못된 방향으로라도 아득바득 나아가고 싶지 않을까. 행복을 한 번이라도 손에 넣고 싶지 않을까. 내 몸 편히 뉘일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고 싶지 않을까? 사채업자가 찾아오는 집, 다니지 못한 학교, 지속하지 못한 결혼생활, 갇혀 지냈던 1년, 떠나보낸 아픈 아이. 그쯤 되면 누구나 세상에 불만을 품게 될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게 그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우니까. 불행답게, 삐뚤어진 행복 추구답게, 현실은 비극적이다. 그래서 영화는 서글프다.




1) 화차는 2000년 시아출판사를 통해 축약본으로 먼저 번역되었다.
2) 2011년 일본의 TV-ASAHI에서 화차를 드라마로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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