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금관(2)

글 입력 2015.02.27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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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관(2)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금관의 기본 형식
3. 금관의 모티프
4. 금관의 상징성
5. ‘신라 금관’의 형식
6. 금관
7. 나가는 말
 
 
3. 금관의 모티프
 
(1) 사르마트 Sarmat 금관
 
 
사르마트금관.jpg
 
 
사르마트 금관은 신라금관에 비해 약 400~500년 이상 빠르게 제작된 것이다. 이 금관은 신라금관과 형식상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기본 문양에서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관테에는 곡옥모양 장식이 촘촘하게 달려있고, 관테의 위쪽으로는 생명수를 상징하는 나무와 동물을 만들어 끼워넣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사르마트 금관이 신라 금관의 원형이라는 주장이 있다.
 
(2)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아 테페 Tillya Tepe 6호분에 출토된 금관
 
금관2.jpg

 
이 금관의 세움장식 또한 나무 혹은 나뭇가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관테와 세움장식 전면에는 둥근 모양이나 나뭇잎 모양의 달개를 매달아 놓았다. 나뭇가지, 달개와 같은 모티프들이 신라금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두 금관을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3)이씩고분의 황금인간
 
zzzz.jpg

 
이씩 고분의 주인공 '황금인간'은 BC 5~3세기경의 스키타이 추장으로 추정된다. 황금인간이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원추형 모자에 달려있던 핀의 모양을 보면 나무가 연상되는데, 그 위에 날개를 벌린 새 1마리가 앉아있다. 이러한 핀의 모양은 신라 금관의 직각수지형 디자인과 똑같다. 서봉총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에도 새가 3마리 앉아 있어 황금인간의 원추형 모자와 모티프가 같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씩의 고깔을 보면 신라 금관의 착용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즉 신라 금관도 원래 고깔에 붙여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신라의 고분에서 발굴된 금관들은 발굴 당시 모두 아랫부분이 넓고 윗부분이 좁았다. 그런데 금관을 복원하면서 모두 수직으로 폈기 때문에 장식들이 똑바로 서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4. 신수사상(신성한 나무를 섬기는 것)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보면 단군의 아버지은 환웅은 천제의 아들로서 지상에 내려와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환웅이 처음 지상에 도착한 곳이 신단수(神檀樹)라는 나무 밑이다. 신라왕계 중 김씨왕의 조상이된 김알지도 겅주의 시림에서 태어났다고 『삼국유사』가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고대 국가의 중요한 인물들의 출현에는 나무와 숲이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민속적으로 신수사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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