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문화전반]

글 입력 2015.02.21 23:4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두 개의 상이 펼쳐지고 그 위로 갖은 음식이 올라왔다. 바쁜 시간에 맞춰 사먹는 것이 오히려 편리해진 나에게 진기한 풍경이었다. 산에서 직접 도토리를 구해 만든 도토리묵과 오색 빛깔을 뽐내는 꼬지 그리고 뜨거운 열기와 차가운 공기가 마찰되어 생겨난 떡국의 서리까지. 무엇을 먼저 먹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밥상이었다.

  우선 국물로 입안을 축이고 말랑한 떡을 씹었다. 사골 육수의 진한 맛이 몸 속 깊숙이 전달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소고기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입가심을 위해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다시 뜨거운 국물을 입안으로 들이 부었다. 이날만큼은 과식해도 된다고 위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행복한 식사를 마쳤다.

  1년에 한 번 먹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떡국. 나는 설날이 아니면 떡국을 먹지 않았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반드시 사골 육수에 쇠고기와 김이 가득 들어가 있어야하고 손 부채질을 할 정도로 뜨거워야 하는, 부수적인 것들을 몸이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부수적일 뿐이다. 햇볕이 내리 쬐는 거실에서 항상 맞은편 끝 쪽에 할머니가 계셨고 음복을 하고 눈을 한 번 찡그리고 다시 떡국을 들이키는 풍경. 설날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사라질 것이라는 의심이 솟구쳤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계가 조금씩 일그러져갔기 때문이다.

 

IMG_3841.JPG


  사촌오빠는 나에게 이번 설날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변화냐고 되물었지만 오빠는 그저 웃었다. 굉장히 씁쓸한 표정이었다. 시골에 오면 확인할 수 있으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고 하며 먼저 시골로 향했다. 

  가득 차 있던 소가 반으로 줄었다. 소를 좋아했던 동생은 축사 근처를 맴맴 돌았다. 소에게 밥을 주는 시간도 정확히 반으로 축소되었다. 텅 빈 축사는 염소가 차지하게 되었다


IMG_3849.JPG


  소 값이 예전보다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반대로 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사료와 그 외의 비용은 비싸다고 했다. 순간 어렸을 적 동생이 송아지와 찍었던 사진이 생각났다. 어미 소를 향해 가려는 송아지를 붙잡고 천진난만하게 송아지 옆에서 사진을 찍던 모습, 추억이 되었다.

 

  다시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을 것이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시간과 시골로 내려오는 빈도수는 반비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떡국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설 풍경은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포터즈3기-윤수지님-태그1.png


[윤수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