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대한 뿌리와 꽃, 김수영과 김춘수 [문학]

글 입력 2015.02.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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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인 1960년, 한국시사에 빼놓을 수 없는 두 시인이 있다. 한 쪽은 현실참여시로, 다른 한 쪽은 무의미시로 서로 다른 영역을 확장했다. 전자는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고 한 김수영이고, 후자는 ‘꽃이 되었다’고 한 김춘수이다. 화자의 심적 상태보다 현실을 우선한 김수영과 현실을 배제하고 주관과 감정을 드러낸 김춘수. 같은 시기, 또래의 두 시인은 어떻게 자신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을까?

김수영김춘수2.jpg
(좌 김수영, 우 김춘수)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김수영에게 있어서 시란 근본적으로 양심의 문제이자, 얼마나 절실한 문제들을 새롭게 표현해내느냐 하는 문제로 요약된다. 시인은 4.19를 기점으로 모더니티에서 현실참여시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는 6.25전쟁과 4.19와 5.16에 대한 경험으로써 부정적 현실을 마주하고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1960년에 쓴 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의 과격한 제목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화자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중략)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사령」은 1950년대 후반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부조리를 목격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시인의 자기 비판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4.19 혁명이 문화적으로 성취한 한 성과로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을 들기도 한다.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자유란 누가 가져다 주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싸우고 노력해서 얻는, 얻어야만 하는 능동적, 주체적, 적극적 개념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시된다. 시 속에 사회성, 역사성을 강력하게 이끌어 들임으로써 시가 사회•역사적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 반영이라는 점을 보여 준 데서 기존 시의 예술주의 또는 문학지상주의에 강력한 반발과 저항을 펼쳐 보였다. 뿐만 아니라 자유와 혁명의 본질 및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의미가 배제된 서술적 이미지는 순수하다”
이와 반대로 시와 현실을 분리한 대표적인 시인이 바로 김춘수이다. 그는 시에서 의도적으로 외부세계와 대상을 상실시킴으로써 시를 현실에서 독립된 미적 실체로 만들었다.

1940-1950년대 초반의 김춘수의 시를 보면 릴케의 존재론적 관념론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관념시로 「꽃」과 「꽃을 위한 서시」가 있다. 「꽃」을 살펴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부분에서 명명 이전은 부재, 명명 이후는 존재임을 발견할 수 있다. 존재하되 그것이 존재로 규정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부재의 상태라는 것, 부재하는 것을 존재로 불러내는 것은 다름아닌 이름 부르기라는 것이다.

관념시에서 무의미시로의 이행은 ‘비유적 이미지’에서 ‘서술적 이미지’로 변화이기도 하다. 비유적 이미지에서 비유라는 것은 ‘무엇의 의미를 구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유가 사라지면 무엇은 다른 무엇도, 무언가의 무엇도 아닌 ‘무엇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서술적 이미지’는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배후에 그 어떠한 관념이 없어 존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미지는 순수하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후략)

무의미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있다. 「꽃」의 화자가 명명하고 명명되기를 염원했던 것과는 달리 이 시에서 화자는 묘사를 함으로써 이미지의 연쇄가 이루어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시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을 그대로 시에 가져온 김수영과 현실을 시와 완전하게 분리한 김춘수. 김수영은 진정한 시인이란 현실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자라고 했고 김춘수는 시는 무엇에 대한 반영이나 전달일 수 없으며, 독립된 목적이자 실체라고 했다. 



참고문헌
김수영, 『한국 현대시의 대비적 인식』, 푸른사상, 2005
김윤식•김재홍, 『한국현대시사연구』, 시학, 2007
오세영 외 4명, 『한국현대시사』, 민음사, 2007
오세영, 『20세기 한국시인론』, 월인, 2005
이은정, 「부재의 존재론, 역사의 시학」, 『한국문예창작』 제9권, 2010
이은정, 『현대시학의 두 구도』, 소명출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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