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뉴미디어 아트에서 시간이 가지는 의미 [문화전반]

글 입력 2015.02.0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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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아트에서 시간이 가지는 의미












뉴미디어 아트는 시간의 예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20세기 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안느-마리 뒤게는 시간은 예술 작품의 반복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한 순간을 포착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인 만큼 시간은 예술작품 존재의 전제이기도 하며 예술작품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예술이 회화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는 발전 과정에서 시간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작품 속 인물과 상황이 정지해있는 조형예술에서 컴퓨터에 기반한 뉴미디어 아트, 움직이고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인터렉티브 아트가 발달함에 따라 작품 안에만 존재하던 시간은 예술작품 표면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관객들은 예술작품에서 시간을 직접 체험하고 느끼게 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뉴미디어 아트에서 시간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예전부터 예술작품에서 시간이 어떻게 나타나고 작용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양에서의 시간관을 살펴 볼 때 종교를 빼놓을 수 없다. 기독교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순차적인 순서에 따라 구성되고 전개된다. 따라서 매우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있다. 직선적 시간관이 담겨있는 회화나 조각은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된 이야기 전개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융합되고 서로 접합되는 이야기가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로 구성되는 이야기 중에서 하나의 단일 장면을 선택하는 식이다. 종교적 시간관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 까지 예술작품들은 모두 순차적인 시간 구성을 따르고 있고 각각이 가지는 의미도 동일하다. 그 시기의 작품들은 단일한 시간 구성, 이야기 전개를 가지며 예술작품 안에서 시간은 정지한 채로 머무른다.

종교에 의한 직선적 시간관을 바꾼 것은 바로 큐비즘의 등장이었다. 큐비즘은 동일한 시간과 하나의 시점을 사용하는 고전적인 표현 방법에서 벗어나 다시점과 다시간을 이용한 조형예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큐비즘에 영향을 준 작가는 세잔이다. 세잔은 처음으로 관찰자의 이동에 따른 다시점을 이용해 입체적인 물체를 표현했고 일관된 시간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물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던 작가이다. 세잔의 대표적인 작품인 생 빅투와르 산은 그의 다각도적인 접근과 시간의 변화가 응축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작품을 보면 인물들은 심하게 뒤틀려있고 해부학적인 신체 모습을 하고 있다. 일련된 시간이 해체되고 다양한 시각과 혼재된 시간을 동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세잔과 피카소로 대표되는 큐비즘에서 관객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대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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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생 빅투와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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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아비뇽의 처녀


20세기 후반 사진의 발전과 더불어 예술가들은 사진으로 나타나는 정지 및 운동 이미지를 통해 시간을 시각화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이다. 머이브리지는 1878년 최초로 말의 움직임을 연속된 사진들로 나누어 촬영한 인물이다. ‘크로노포토그라피(chronophotography)’라고 불리는 직접 인화 방식의 사진술은 후에 자코모 발라를 포함한 미래주의자들을 비롯해 마르셀 뒤샹,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영화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좀 더 적극적으로 시간을 다룬 화파는 미래파이다. 미래파는 우리가 화폭 위에 재현하고 싶은 것은 역동적 세계의 고정된 한 순간이 아니라, 세계의 역동성 그 자체이다라고 선언하면서 화폭 위에 속도와 시간 그 자체를 담으려고 하였다. 미술의 표현 양태는 이와 같이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과정이 20세기에 나타나는 영화와 아방가르드 시네마들, 플럭서스 운동과 현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디지털 아트들의 자양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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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이브리지, 자연-동물 운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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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


뉴미디어 아트에서 시간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예술은 아무래도 비디오 아트일 것이다. 공간에 중심을 두는 전통적인 조형예술과는 달리 비디오 아트는 시간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비디오 아트는 이로써 조형예술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오늘날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미지와 극도로 빠른 텔레비전 영상들은 사람들이 이미지를 접하는 방식을 급격하게 바꾸었다. 사람들은 영상과 음향이 함께 어우러진 이미지를 빠르고 종합적으로 소비한다. 사람들은 정지한 이미지가 아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의 흐름, 이미지의 소음과 번쩍거림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광고 영상이나 판촉용 비디오 클립은 이런 경향을 조장한다. 예술가들은 이런 경향에 가세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강화했는데 대표적인 예술가들이 바로 비디오 아트 작가들이다. 그들은 빠른 속도의 이미지로 색다른 경험을 가능케 하는 초고속 몽타주 기법을 개발하고,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혼합하거나 엮어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

빌 비올라의 작품을 통해 비디오 아트 내에서의 새로운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빌 비올라는 고속 촬영을 한 영상에서 이미지의 동작 시간을 실제 촬영 시간보다 길게 늘이는 작업을 즐겨 사용한다. 실제 시간보다 느리게 진행되는 빌 비올라의 작업은 작품에 환상적 깊이를 만들어주며 서서히 움직이는 동영상은 지각 방식의 변화와 동세와 정지 사이에서의 내적 성찰과 사유를 유발한다. 느리고 서서히 진행되는 동영상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의 섬세하고 진중한 듯한 움직임은 일상적 움직임에서 볼 수 없는 영적인 것과 그들이 지닌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다. 2001년에 제작된 <밀레니엄을 위한 다섯 천사>라는 작품은 이미지의 변형에 따른 시간의 시각화를 보여주는 예이다. 빌 비올라는 죽음에서 생으로 뒤바뀌는 이미지들을 만들기 위해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다섯 차례 촬영한 후 모니터를 돌리거나 화면을 뒤로 감는 등 여러 가지 기법을 이용해 변형했다. 고요와 정적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약동이 시간의 흐름을 최대한 시각화하는 그의 슬로 모션 속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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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비올라, 밀레니엄을 위한 다섯 천사


 베르그송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의 본질은 흘러간다는 데 있다.” 시간은 흐른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간은 동일한 속도로 흐르지 않고 개별적으로 다르게 흘러간다. 뉴미디어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편집은 시간의 상대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오늘날 뉴미디어 아트에서 시간의 절대성은 찾아볼 수 없다. 여러 시간이 결합하고 중첩되고 배치가 역전되는 가운데 시간의 고유성은 임의성으로 변화한다. 관객들은 뉴미디어 아트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체험하는 일상적인 시간의 속도에서 벗어나 평생에 거의 경험하기 어려운 속도로 이미지를 접한다. 그것이 매우 빠른 속도이던지, 매우 느린 속도이던지 간에 새로운 시간과 속도의 체험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의 차원을 제공하고 극한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일상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 이것이 뉴미디어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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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뉴미디어 아트>, 마이클 러시 지음, 심철웅 옮김, 시공사

<뉴미디어 아트와 시간>, 이영훈 지음, 재원

<전자 시대의 예술>, 프랑크 포빼르 지음, 박숙영 옮김, 예경

<예술과 뉴테크놀로지>, 플로랑스 드 메르디외 지음, 정재곤 옮김,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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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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