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가탐구 - 검은 피카소, 장 미쉘 바스키아[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2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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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미술관에 갔다가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본 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머지않아 80년대 뉴욕 미술계의 떠오르는 샛별로써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낙서로 예술을, 장난으로 고상함을 만들어 내는 거리의 자유로운 영혼. 검은 피카소, 미술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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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는 짧은 생을 살며 약 1000개의 페인팅과 1500개의 드로잉을 남겼다. 원색을 사용하길 좋아했는데 특히 초록색을 좋아했다. 흑인으로써 받았던 차별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고 사람의 형상을 왜곡시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그는 그림에 저작권을 표시하는 c모양을 넣어 본인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흑인들에게 존경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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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형상을 왜곡시켜 표현하는 것에 대한 해석에는 ‘그레이 해부학’에 관한 것이 있는데, 바스키아가 1968년 교통사고를 당하였을 때 그의 어머니 마틸드가 병실에서 심심한 아들에게 ‘그레이 해부학’을 가져다 주었고 , 당시의 그 해부학 책을 관심있게 본 바스키아가 훗날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양한 소재가 해부학도상으로도 나타나고 인물들은 직접적으로는 이미지로 간접적으로는 인물에 연관된 문구를 통해 나타난다. 이런 것들은 모두 기존의 미술언어가 아닌 그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관람객에게 더 큰 파격으로 다가간다.

“그림 안에 있는 이 글을 해석해주시겠소?”
“해석이요? 그냥 글자에요.”
“압니다. 어디에서 따온 겁니까?”
“모르겠어요. 음악가에게 음표는 어디서 따오는지 물어보세요. 당신은 어디에서 말을 따옵니까”
-장 미쉘 바스키아의 인터뷰 중 -

낙서그룹 S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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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바스키아는 16살 무렵 SAMO라는 그래피티 그룹을 결성하여 맨하튼 외벽을 채워가기 시작한다.1978년 바스키아는 빌리지 보이스에서 SAMO는 훗날 낙서 미술가가 된 알디아즈와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창안한 것이라고 한다. 도취된 상태에서 바스키아가 뭔가를 보고 “SAME OLD SHIT!(흔해빠진 개똥같은)”하고 말했다가 그것을 머릿글자로 짧게 변환해서 생긴 것이라 한다. 그렇게 낙서그룹 세이모를 조직하고 스프레이 낙서를 시작하였다. 그 후 뉴욕의 현대미술관 앞에서 엽서와 티셔츠 위에 그림을 그려 팔면서 자신의 회화세계를 구축하였다.

앤디워홀과 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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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앤디워홀이다. 바스키아가 막 성인이 되었던 시기는 미술사에서 가장 극심한 사조 통합의 시기였다. 전 세계의 국가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이 잠식되어지고 1960년대부터 일어난 젊은 층의 반발 심리는 극에 달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십대들이 붓대신 스프레이통 하나만을 들고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회의 바닥에서 혼란의 물결이 일고 있기 이전에 미술계에서는 팝 아트가 공식적으로 활성화되어 대중과 예술이 상업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앤디 워홀이 주를 이루던 1970년대 후반의 미술계는 이를테면 ‘아랫물’과 ‘윗물이 만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 

그리고 이 두 강물의 통합이 이뤄지는 바로 그 역사적인 순간에 워홀을 묵묵히 자신을 길거리에 표현하던 흑인 화가 바스키아에게 고개를 돌렸다.작품마다 혁신적이라는 칭송과 거대한 스캔들을 동시에 흩뿌리던 앤디 워홀은 이미 스타 중의 스타였다. 워홀은 어린 바스키아보다 현저히 높은 위치에서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은 없었다. 바스키아로서는 늘 꿈꾸던 거침없는 미술계로의 첫 발을 인도해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워홀에게 맡겼고, 나이가 든 워홀은 그런 바스키아의 젊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둘은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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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1985 (워홀과 바스키아의 공동작)
바스키아의 성공은 그의 조력자들에 의한 탄탄한 마케팅에서 이루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앤디 워홀을 비롯해 브루노 비쇼프버거, 르네 리카도, 아니나 노세이, 디에고 코르테즈 등이 있다. 바스키아를 알아본 한 명의 작은 물살이 점점 더 커지는 파도의 물결처럼 바스키아는 점차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떠오른다. 하지만 세간에는 앤디워홀이 바스키아를 이용해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바스키아는 매우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는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고, 워홀은 바스키아에게 있어서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예술적 성향 뿐만 아니라 각자의 관심과 취향까지도 공유하곤 했었다. 워홀은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을 했지만 바스키아와는 좀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이 죽기 2년 전 1985년, 바스키아는 그와 함께 뉴욕에서 거대한 공동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많은 기자들은 두 익살꾼의 만남을 기대하며 취재열기를 달아오르게 했지만 다수의 열광과는 달리 화려하게 열린 바스키아와 워홀의 전시는 처음으로 고배를 마시게 된다. 때문에 바스키아는 워홀과 멀어졌고 그 뒤로 둘의 작업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워홀과의 마지막 관계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고 해도 바스키아의 작가적 삶을 주로 이끌어 주었던 앤디 워홀의 사망 소식은 그에게 가눌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워홀이 사망했던 1987년 2월 이후로 바스키아는 거의 모든 전시 계획을 중단한다. 그 이후 그림 한 점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는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사치와 쾌락에 빠져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지낸다. 결국 워홀의 사망 1년 후인 1988년 여름, 바스키아는 뉴욕의 자택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가 공식적으로 화단에 머리를 내민 지 8년 만이었고 그의 나이는 27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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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는 불꽃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그리고 불은 꺼졌다. 하지만 남은 불씨는 아직도 뜨겁다.」

위의 시는 바스키아의 애인이었던 수잔이 바스키아를 위해 장례식장에서 낭독한 시다. 바스키아가 떠나고 또 다른 거리 미술가였던 키스 해링(Keith Haring)도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사실상 1980년대의 주축을 이루던, 그리고 그래피티 아트의 물꼬를 틔웠던 화가들은 앤디와 바스키아의 죽음을 중심으로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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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가 죽은 지 2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당시에 받던 천재라는 호칭을 그대로 누리고 있다. 장 미셀 바스키아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 사회에 강한 일격을 가했던 자유구상 화가였다. 그는 ‘낙서’라는 (시대상의)비예술적 행위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나 비판을 엮어 내는 것에 소질이 있었고 그것을 폭로함으로 인해 자신을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세상에 내던졌다. 미술사에서 바스키아의 탄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장벽을 허무는 돌파구의 역할을 했던 셈이다. 영화 <바스키아>에 보면 바스키아에게 "너를 이해 할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라고 말 하는 장면이 나온다.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작가였을까? 끊임 없이 자유를 갈망하던 장 미셸 바스키아. 예술계의 거대한 빛을 너무 일찍 잃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예술성을 발휘하기에는 오히려 과거가 나쁘지 않은 시대였던 것 같다. 바스키아 본인에게는 거칠고 험난한 세상이었겠지만, 그 어둠과 장애물 덕분에 검은 피카소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그의 비운이 오늘날 천재라는 단어에 걸맞게 각인되어지지 않았을까 '행복하고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라는 해피엔딩의 결말은 왠지 모르게 천재 아티스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잔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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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이트
http://korea.nomesdesign.com
http://www.typographyseoul.com


<영화 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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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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