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즐거운 아프리카 미술展

글 입력 2015.01.1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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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아프리카 미술 展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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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 위치한 아라아트센터에서 아프리카 미술전이 열렸습니다. 피카소, 모딜리아니, 자코메티는 아프리카 미술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 마침내 한 세기를 아우르는 위대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유명한 작가에게 영감을 줄만큼 영향력 있는 아프리카 작가들이 총출동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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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그림은 조지 릴랑가(1934~2005)의 작품입니다. 조지 릴랑가는 아프리카 미술계의 거장입니다. 아프리카의 현실은 괴롭고 어지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릴랑가는 그런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한 편의 푸닥거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배가 볼록하면서도 큰 입과 큰 귀를 가진 우스꽝스러운 배우들을 통하여 절망의 무대를 휘젓는 것입니다. 이 그림을 감상하며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작품 안을 사람들과 도깨비들이 꽉 채우고 있는데 그 배우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교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몸을 만지거나 시선이 서로를 바라본다거나 어떻게든 그들 간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지릴랑가가 추구하는 유쾌하고 기분 좋은 그림을 만들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이런 접촉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접촉뿐만 아니라 작품의 색감 또한 눈여겨 볼만 합니다. 밝고 따스하며 비비드한 색채는 그의 가장 큰 특징이며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불러옵니다. 그림 안의 사람들과 도깨비들의 재미있는 표정과도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지는 색감입니다. 이러한 색감에 대해 유명한 미국의 예술가 키스헤링(1958~ 1990) 또한 감명 깊게 느꼈는지 그의 비비드한 색감과 느낌이 바로 이런 조지 릴랑가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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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릭 릴랑가(1974-) 는 위에서 언급했던 조지 릴랑가의 손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배우들이나 색감,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한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핸드릭 릴랑가의 그림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기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핸드릭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춤추기를 원하며 함께 춤을 추다 보면, 절망에 빠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서로를 보며, 만지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림 안의 배우들을 통해 아프리카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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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그림은 헨드릭 릴랑가의 ‘페스티발’이라는 작품입니다. 헨드릭 릴랑가( 1974~ )의 자식은 6명입니다. 그중 세 명은 고아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식도 키우는 것이 만만치 않은 아프리카,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드릭은 더 많은 아이들을 입양하겠다고 합니다. 한 화면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 하는 헨드릭의 마음이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기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헨드릭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춤추기를, 함께 춤을 추다 보면 우리들은 서로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춤은 모두가 함께 하나가 되어 희망으로 나가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춤을 통해 절망에 빠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고 합니다. 기뻐서 춤을 추기도 하지만, 슬픔을 나누고 극복하기 위해 춤을 추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춤을 통하여 여럿이 함께 하나가 되어서 험난한 세상을 뚫고 나가자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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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사람들은 태초에 빛이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빛’을 하나의 의미로 한정시키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태초의 빛을 말씀이라 하였고, 사랑이라 하였고, 평화라 하였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누군가는 빛을 색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빛의 모습을 동굴의 벽이나 바위에 그렸습니다. 그렇게 태초의 빛은 역사가 되면서 시간은 거침없이 흘렀습니다. 그 누군가의 후손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의 벽이나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느 누군가의 유전자 속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하면서 우리의 신화로 자리메김하였습니다. 태초의 빛을 오늘의 빛으로 붓질한 이가 바로 팅가팅가(1936~1972)였습니다. 그는 수 만년동안 동굴의 벽이나 바위에 갇혀있던 그림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고, 동네 담벼락이나 집의 벽에 잠들어 있던 그림들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었습니다. 1960년대의 아프리카, 아무런 희망도 없을 것 같았던 척박한 땅에 팅가팅가는 씨앗을 뿌렸고, 숲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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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세의 ‘시간의 문을 그리다’라는 작품입니다. 아프리카의 색은 참으로 밝습니다. 흰색도 밝고 검은색도 밝게 보입니다.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세계로 끌어내린 신들의 중심에 인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 성전(聖殿)이 없고, 성전(聖典)이 없는 것도 다 그런 이유입니다. 사하라사막의 이남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물론 조상신을 섬기는 조그마한 제단이나 계율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고통으로 선택하게 하는 거대한 성전이나 율법으로 인간을 가두는 성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신을 믿지만, 신을 절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 즉 신성을 인간의 심성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조각이나 그림에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타데세의 ‘시간의 문을 그리다’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서도 사람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당한 여자의 모습을 통해 ‘시간의 문’이라는 신적 소재를 표현한 작품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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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츠의 그림에서 넓게 벌린 팔은 어느 누구와도 쉽게 손을 잡을 수 있게 하고 하늘 높이 치솟는 안테나는 신과의 거리마저도 짧게 만들고, 길가에 즐비한 차들은 주인이 따로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서 두츠가 그리는 아프리카의 가난은 누추해 보이지 않습니다. 위의 그림은 두츠라는 화가의 ‘100=1,1=100’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시리즈로 굉장히 많은 그림들이 있습니다. 추측해보기를 사람100명은 1명이다. 무언가 100개는 1개이며 1개는 100개임을 나타내었다고 생각합니다. 100과 1은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며 그것들의 쓰임과 의미, 상황에 따라 같아질 수 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뭉치면 산다’라는 말이 있듯이 100의 크기 또한 뭉쳐져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과 제목입니다. 추상적인 단어와 그림을 감상자에게 보여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그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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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츠'1-100=0' 이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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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아세파의 그림입니다. 역사와 음악 그리고 여인은 아세파가 사랑한 것들 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 처음 세워진 도시를 왜 배경화면으로 그리는지, 자연이 품고자 하는 음률을 왜 여인의 몸으로 표현하려는지, 그렇게 아세파는 그림을 통해서 그가 꿈꾸는 이데아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습니다. 그림의 빨간 색감은 그가 사랑하는 역사를 ,즉 에티오피아에 처음 세워진 도시를 그렸으며 그 안의 배우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존재,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음악을 여인들을 통해 그려냈습니다. 위의 사진에는 이 그림의 강렬하고도 부드러운 색채를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림이 감상자를 유혹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세 여인들이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떠서 감상자를 응시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신비로운 그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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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이러한 순수하며 낯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전시였습니다.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작품이었지만 이러한 작품에 영감을 받았던 많은 유명작가와 디자이너들 덕분인지 낯선 느낌과 함께 익숙한 느낌 또한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미술이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더욱 많아져서 신비로운 이 느낌을 다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김남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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