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통이 쌓여 소통을 이야기하다 - 히치하이킹 (Hitchhiking, 2004)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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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킹 (Hitchhiking, 2004)

감독- 최진성

31분/ 단편드라마, 판타지



여기 차를 타고 가는 두 명의 남녀가 있다. 연인인 이들은 지금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고 있는 길이다. 연인과 바닷가 여행이라는 말을 병치해 두면 으레 핑크빛 낭만 같은 것을 예감하기 마련인데, 이 연인에게는 그러한 예감이 빗나가려는 모양이다. 출발부터 어쩐지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여행길.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인 까닭일까. 자극적인 관계와 새로운 경험을 꿈꾸는 남자와 그런 남자가 못마땅하기만 여자, 이들 사이에는 수많은 말이 오간다. 하지만 이 말들은 서로 어딘가 평행선을 긋고 있는 듯 만나는 지점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티격태격 의미 없는 말다툼을 지속하던 차, 이들은 겨우 한 주유소 앞에 멈춰 선다. 여자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서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기다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자는 도통 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남자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꺼져있는 여자의 휴대전화는 야속하다. 여자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이때, 누군가 남자의 차 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친다. 남자의 연인과 꼭 같은 옷을 입은 낯선 여자가. 여기서부터 이들의 괴이한 동행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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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진성은 영화 <히치하이킹>을 한 줄로 요약하라는 말에 “사랑은 빡세다.”란 한 마디를 남긴다. 우리는 생을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고 관계를 지속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 우리가 설령 같은 언어로 떠들고 같은 공간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다르고 또 그렇기에 매번 서로에게 얼마나 낯설며 서툰지.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조차 각기 지닌 성격이 다르고 기호가 다르다는데, 완전히 다른 외형을 한 채 완전히 다른 삶의 반경에서 살아오다 어느 날 이렇듯 우연히도 우리가 만났으니 우리는 얼마나 완벽하게 다를 것인가. 같은 사과를 보고 있어도, 누군가는 사과가 빨갛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주황빛이 돈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 사이에는 넘어서지 못할 불가능한 벽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가닿기 어렵다. 말은 쉽게 오해를 사고 관계는 쉽게 왜곡된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으로 뱉었던 말을 곱씹고 곱씹는 밤이 긴 것처럼 관계라는 말, 참 ‘빡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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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통을 이미지 그 자체로 치환하여 제시한다. 여기서 영화의 서사적 맥락은 지워지고 이로써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장면들이 파생된다. 불연속적인 장면들 속에 인물들은 난데없이 튀어나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사라지고 다시 등장하며 위치를 바꾼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에서 유일하게 추출해낼 수 있는 공통적인 지점은, 이 행위들이 모두 일방향적이라는 사실뿐이다. 영화의 말미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지하철이란 공간은 이들의 일방향적 행위를 보다 노골적으로 제시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각자 줄넘기를 하고, 노래하며 권투를 연습하는 이들의 모습은 같은 프레임 안에 들어있지만 쪼개진 컷들처럼 보인다. 마치 각자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속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여기서 너무 멀다,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끊임없는 불통들이 쌓이고 또 쌓인다. 동시에 여기서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탄생하는 아이러니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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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히도 복잡한 관계의 성질은 어쩌면 독선적인 우리 개개인의 바람과 여기서 파생하는 말들에 있지는 않을까. 영화는 나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에 내려놓는다. 번번이 실패하는 소통의 자리에는 각자 다른 방향을 보는 개인과 개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물론 앞서 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나 다른데 눈을 마주치고 같은 방향을 보는 일이 쉽겠는가. 그러나 무한히 빚어지는 불통 속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끔은 이 모든 관계가 우리를 서러운 마음에 가져다 놓는다 한들, 어쩌겠는가. 먹고 살기 어렵다고 먹는 일을 포기할 수 있나. 우리의 이렇게 마주 잡은 두 손이 이렇듯 따뜻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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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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