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렌초 데 메디치의 예술 후원(1)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0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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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예술 후원

―보티첼리의 작품사례를 중심으로


목차

1. 머리말

2. 위대한 로렌초

3. 보티첼리의 작품사례

4. 보티첼리 이외의 작가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예술 후원

5. 코시모 데 메디치의 예술 후원과의 차이

6. 로렌초 데 메디치의 예술 후원 평가

7. 나가는 말


1. 머리말

본 글은 메디치 가문의 역량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로렌초 데 메디치, 즉 ‘위대한 로렌초’ 시기의 예술 후원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로렌초의 통치시기에 그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는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보티첼리를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로렌초는 보티첼리를 가문의 화가이자 친구로 삼았을 만큼 그에게 많은 주문을 했다. 또한, 보티첼리의 작품에는 로렌초 메디치의 주문에 의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메디치 가(家)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의 사회에 미쳤던 메디치 가문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티첼리만이 로렌초의 후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보티첼리 이와의 작가들에 대한 예술 후원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것이다. 또한, 로렌초 이전의 세대에서 두드러졌던 예술 후원가인 코시모 데 메디치의 예술 후원과도 비교해보고자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 ? ~ 1510.5.17):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자연연구에 대한 소박한 정열을 보였고, 미묘한 곡선과 감상적인 시정(詩情)에 일찍부터 독자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고전 부흥의 분위기와 신플라톤주의의 정신에 접하고 엄격한 리얼리즘의 일시적인 영향을 받았다.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 로렌초 데 메디치의 조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은행가이자 정치 지배자로서 문화예술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금융업을 통해 축적한 재산으로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희귀서적 소장에 힘써 피렌체의 발전에 기여한 공헌을 인정받아 사후에 시민들로부터 '국부(國父)'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2. 위대한 로렌초

로렌초 데 메디치는 동시대 피렌체 사람들에게 ‘위대한 자(Ii magnifico)’라고 불렸다. 1449년 피에로 메디치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스무 살에 불과하던 1469년부터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위대한 로렌초는 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불리는 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후원을 받았다. 이와 같이 로렌초의 아낌없는 후원은 피렌체가 15세기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로렌초는 직접 시와 노래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시인, 예술 애호가, 은행가, 그리고 정치가였던 그의 통치는 평화로웠다. 그는 사람들에게 피렌체의 예술가들을 고용할 것을 추천했고, 자신의 정원이었던 산 마르코에 조각학교를 열기도 했다. 1492년 4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그는 산 로렌초 성당에 안치되었다.


3. 보티첼리의 작품사례

(1) 봄(Prima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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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 문장(紋章)의 테마인 ‘돌아온 때(Le temps revient)’라는 글귀를 그림의 주된 주제로 삼은 보티첼리는 로렌초를 위해 <봄>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폴리치아노는 자신의 시에서 마상 대회의 미의 여왕(시모네타)를 암시하여 비너스의 탄생을 묘사했는데, 보티첼리는 이를 회화로 옮겨놓았다.

보티첼리는 봄의 귀환을 상징하는 낙천적이고 젊음과 기쁨이 넘치는 배경을 묘사하고, 그림 전체가 로렌초에 관해서 말하도록 의도했다. 오렌지 나무숲을 방패삼아 거친 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피한 채 항상 서 있는 월계수에 등을 기댄 미의 여왕 비너스가 토스카나에 봄이 돌아오는 것을 서서 관장하고 있고, 미의 세 여신이 그녀 앞에서 춤을 춘다. 그녀 옆의 월계수 관목에서는 봄의 세 달인 삼월, 사월, 오월이 갖가지 색깔의 꽃들을 피운다. 눈을 가리고 있는 작은 사랑의 신 에로스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아무데다 화살을 쏘아댄다. 머큐리는 화면 가장 왼쪽에서 오렌지를 따고 있는데, 상인들의 수호 성인이었던 그가 상인들의 상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도시였던 피렌체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졌기에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머큐리가 따고 있는 오렌지는 메디치가를 상징한다.

작품의 제목을 <봄>이라고 붙인 이유는 로렌초의 문장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서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 내에서 행사하는 탄탄한 정치적 입지를 과시하고 자신들로 인해서 봄이 오는, 즉 새로운 세계가 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모네타: 당시 피렌체의 최고 미인. 제네바의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난 시모네타는 15살이 되자 피렌체의 경제력 있는 베스푸치 가문과 결혼했다. 뛰어난 외모의 시모네타는 곧 피렌체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피렌체 최고의 유력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에게 구애를 받았다.

*삼미신(三美神, The Three Graces):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아름다운 여신.


(2) 군신과 비너스(Mars and 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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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앞서 그렸던 <비너스의 탄생>에 이어지는 그림이다. 이 그림 역시 그림 속에 줄리아노와 시모네타를 도입하여 최근의 마상 대회와 관련지었다. 폴리치아노는 그의 시에서 마상 대회의 우승자 줄리아노에 관해 암시하면서 군신(Mars)과 비너스(Venus)의 이야기를 했는데, 보티첼리는 비너스가 금 수 놓은 옷을 입고 비스듬히 누워 사지들 늘어뜨린 채 풀밭에 잠들어 있는 군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고, 그러는 동안 염소 발을 가진 작은 사티로스(반인 반수)가 그의 갑옷을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보티첼리는 이를 비너스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폴리치아노의 시를 그림으로 그대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의 사티로스를 통해 로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 염소자리인 로렌초를 연결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우구스투스는 어릴 때 원뿔형 전투모를 쓰고 가죽 갑옷을 걸친 채 마르스를 기리는 축제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림 속 사티로스들도 투구와 창을 들었다. 보티첼리는 한발 더 나아가 로렌초가 마상 창 대회에서 즐겨 사용하던 긴 창까지 그려 넣었다.


(3) 비너스의 탄생(Birth of 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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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탄생은 메디치 가문의 소유인 카스텔로 별장(Villa di Castello)에 <봄(Primavera)>과 함께 소장되어 있었다. 이 그림은 지도자로서의 로렌초를 부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단순히 미적 감상을 위한 그림이 아닌, 로렌초를 우상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 그림을 통해서, 당시 피렌체의 가장 강력한 지배자인 로렌초에 의해 피렌체의 전성기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림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일으킨 바람에 의해 조개껍데기를 타고 해변에 도착한 비너스와 그녀를 환영하는 여신 플로라가 등장한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서풍이 불면 추운 겨울이 가고 생명이 만개하는 봄이 온다. 보티첼리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를 등장시킴으로써 피렌체에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보티첼리는 ‘꽃의 도시’인 피렌치의 상징인 꽃의 여신 플로라를 등장시킴으로써 비너스가 피렌체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또한, 비너스의 자세는 당시 메디치 가문에 소장되어 있었던 <메디치의 비너스(Venus de Medic)>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로렌초와 친분이 있었던 보티첼리는 이 작품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4) 미네르바와 켄타우로스(Pallas and Centa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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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는 파치가의 음모라는 비극이 일어나기 전의 행복한 나날들을 불멸의 작품으로 남겼듯이, 로렌초가 뛰어난 외교 수완을 발휘해 반란군을 지원했던 로마교황 및 나폴리 왕과의 전쟁을 막아 피렌체의 평화를 지킨 것을 작품으로 남겼다.

켄타우로스는 범죄와 전쟁 즉, 파치가의 음모와 불의한 전쟁이 피렌체에 끼친 영향을 의미한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월계수 화관을 쓰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켄타우로스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있다. 미네르바가 입고 있는 옷의 무늬, 즉 세 개의 링과 마름모가 엮인 모영의 문장은 로렌초의 상징이다.

미네르바 앞에서 켄타우로스는 두려운 탓인지 몸을 움츠리고 있다. 이성을 상징하는 미네르바가 본능을 상징하는 켄타우로스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성이 본능을 지배한다는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에는 아름다운 명화의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그림들이 당시에는 메디치 가문의 위엄을 보여주는 일종의 정치적 홍보물이었다. 보티첼리는 그림 속에 로렌초가 통치하던 시대의 분위기를 작품에 집어넣었다. 앞서 소개한 작품 중에서 <봄>, <군신과 비너스>, <비너스의 탄생> 세 점은 1475년의 마상 대회와 더불어 로렌초가 출범시킨 문예 부흥의 시대에서 그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미네르바와 켄타로우스>에서는 로렌초가 파치가의 음모에 따른 전쟁과 위기에서 피렌체를 구출한 일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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