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주원익, 『있음으로』 - 언어, 그 치열한 전선에서.

글 입력 2015.01.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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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익 있음으로

-언어, 그 치열한 전선에서.

 

있음으로.jpg

나는 시집을 고를 때, 먼저 크게 훑어본 후 눈에 들어오는 시가 있거나 느낌이 좋으면 그 시집을 선택하고는 한다. 일반적으로 느낌이 좋다고 하면 분위기나 정서와 같이 의미로 전달되는 어떤 것들을 말하는 것이지만, 주원익의 있음으로에서 처음 느낀 것은 의미에서 전달되는, 색과 질감이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 그것은 텅 빈 곳의 공허함이었다. 다음 시를 보면 조금은 내가 느꼈던 첫 인상을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난다

날으는 것들은 내가

아닌 나라는 걸

안다


나는 나른다

나르는 내가 감옥이

아닌

날개라는 걸

모른다 그러므로

난다


창문은

감옥을 위한 날개

당신은 안다


사라진 당신은 당신이

아닌 날개, 나를 위한 감옥


날개는 그러므로

날지 않고

나는 당신을 위해 사라지는

틈,


당신은 난다

날으는 것들은 내가

아닌

날개라는 걸

나른다.

 - 날개 감옥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다. 시를 이루는 언어를 읽어낸다고 해서 '의미'라는 것이 다가오지 않는다. 여기에서 '당신', '나', '날개', '난다'는 언어들은 무수히 재배치되며, 이런 과정이 바로 언어가 어떠한 절대적인 의미를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성호 시인은 있음으로에 대해 예상된 실패를 위한 시도라고 정의한다. 한국어는 한자와 번역어의 유입 등으로 이미 타자의 언어가 내재화된 언어라고 보고, 이러한 타자가 담긴 언어에서 의미를 없애고 단순한 오브제로 만든 뒤 그것을 배치하여 텅 빈 언어임을 드러낸다. 시인은 이 실패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쓰여지는 순간 나는 완성되고

온전히 허물어졌다.

- <미래의 책> 일부.


 이렇게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국어 시간에 배우던 비유와 상징 그 이상으로, 시는 언어에 대한 고찰이 담긴 그 과정을 겪어왔다. 의미와 메시지가 읽히는 시보다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는 멀지 않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발생>

...

당신은 시를 겪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당신을 쓰고 있는지 시는 말할 수 없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당신은 묻지 않을 것이다. 신이 시간을 꿈꾸듯 시는 시간을 짓는다.

...

당신은 이미 겪어내고 있었을 것이다. 열림의 사이. 시간은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이미 부재한 시가 당신을 꿈꾸는 동안 그것이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말함. 충분히 아무것도 말해질 수 없다. 모든 움직임이 시간을 쓴다.

...

 

그렇다. 당신은 이미 시를 겪어내고 있다. 텅 빈 한국어의 화자로서, 언어 안에서 자신인 동시에 타자인 존재로서 시를 겪어내고 있다. 당신이 겪어낸 시간을 마주하자. 시가 거기에 있다


+

『있음으로』가 흥미롭다면 이준규의 『네모』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있음으로』를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오른 시집이 『네모』였기 때문이다. 『있음으로』가 언어의 공허함을 울리는 시집이었다면, 『네모』는 언어를 탄생시키고 소멸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언어 탐색의 그 치열한 전선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를 담은 언어를 사용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텅 빈 언어를 마주한다는 것이 어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달리 말하면 색다른 경험이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단순한 언어와 그를 기록한 문자가 이렇게 경이로운 경험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흥미롭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의미없는 반복은 피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고 싶다. 당신과 이 경이로운 경험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 마주하자. 시가 거기에 있다. 

[조아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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